그는 사람들이 마음에 불을 질렀다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5/23
그는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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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봄 어느 날, 엄마가 이번 주말은 꼭 시간을 비워달라고 하더구나. 네가 피아노 콩쿠르에 나간다고. 그렇게 일을 미룬 토요일 오전, 책상에 앉아 인터넷에서 노닐고 있는데 이상한 뉴스가 떴어. ‘노무현 전 대통령 투신.’ 투신은 중태로, 이어 사망으로, 서거(逝去)로 바뀌었지만 아빠는 그다지 큰 느낌이 없었어. 전직 대통령으로서 형을 비롯한 가족의 돈 문제로 검찰에 불려가 조사받는 등 철저하게 망신을 당하고 있었기에 저 자존심 강한 양반이 극단적 선택을 할지 모른다는 짐작을 하고 있어서였을까. 아빠는 그렇게 큰 동요 없이 차를 몰고 으리으리한 건물로 가서 네가 흰색 드레스를 입고 예쁜 티아라를 쓴 채 피아노를 뚱땅거리는 걸 지켜봤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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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은 일요일이었지만 아빠는 일을 나갔지. 돌아오는 길에 시내를 통과하면서 아빠는 덕수궁 앞에서 내려달라고 했어. 서울 덕수궁 앞에 시민이 자발적으로 세운 분향소에 들렀다가 목욕탕이라도 갈 참이었지. 하지만 아빠는 목욕탕에 가지 못했다. 줄이 덕수궁 돌담길 끝까지 늘어서서 아빠가 빈소 앞에 서기까지 세 시간이 넘게 걸렸거든. 그런데 지루한 기다림 끝에 노무현 대통령 영정 앞에 이르렀을 때 아빠는 뜻하지 않은 경험을 했어.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던 거야. 어,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의아했지만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눈물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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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뉴스
돌아오는 길에 코를 팽팽 풀면서 아빠는 고개를 계속 갸웃거렸어. 내가 왜 이럴까. 노무현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한 건 아니었고 되레 정책에 고개를 저은 적이 많았으며 주변 인물의 행동에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던 나였거든. “당신도 별수 없군, 흥!” 그러던 아빠가, 왜 노무현의 영정 앞에서 무참히 허물어졌고 그 후 1주일을 눈물바람을 하며 지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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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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