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2
“100% 안전한 배터리는 없다. 하지만 안전하게 관리할 수는 있다.”
21일 오후 서울 강남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배터리 안전에 대한 과학적 접근’ 포럼에 참석한 배터리 및 화재 전문가들은 “현재의 (전기차) 공포는 배터리 시스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배터리를 이해하면 사고 나지 않게 잘 사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전기차 화재는 통계상 내연기관차에 비해 화재 발생 확률은 훨씬 낮지만 전기차 수 증가에 따라 사고가 늘고 있다”며 “안전 기술도 늘고 있으므로 더욱 안전한 전기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 언제 발생하나…배터리 화재의 3조건
배터리 화재를 진압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배터리 화재가 언제, 왜 발생하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오기용 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배터리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을 세 가지로 압축했다. 하나는 충격이나 굽힘, 뚫림 등으로 물리적 충격을 받은 경우다. 대표적인 문제가 배터리에서 가장 약한 부분인 분리막이 찢어지는 경우다.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이 직접 닿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하는데, 분리막이 찍어지면 둘이 닿으면서 전기 단락이 일어나고 열이 발생한다.
지나친 충전과 방전도 대표적인 배터리 화재 원인이다. 리튬이온배터리는 리튬 이온이 음극과 양극에 과도하게 들어가면 분자 구조가 붕괴하며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 배터리가 녹기 시작한다. 스스로 열을 내며 온도를 올려 역시 열폭주 단계로 들어간다.
마지막은 열이다. 물리적 충격과 과도한 충방전으로 고열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고, 고온 환경에 노출되거나 자체 발열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오 교수는 “배터리는 150도 이상이면 스스로 발열한다”며 “셀에 불이 나서 발생한 열이 옆의 다른 셀에 옮겨 붙는 경우 등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나용운 국립소방연구원 연구사도 “배터리가 고온일 때 충전을 자제해야 하는 이유”라며 “주변 환경 온도가 높을 때 배터리가 반응하면 온도가 더 빨리 높아져 화재 위험성이 증가한다”고 말했다.
2. 왜 열폭주가 나는가, 왜 끄기 어렵나
배터리 화재가 내연기관차와 양상이 달리 진압이 어렵고 전파가 잘 되는 이유는 배터리 내부 구성품이 온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녹는 ‘연쇄반응(체인 리액션)’ 대상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재료가 열을 발산하면서 타면서 점점 온도를 높이고, 이 열이 다시 다른 재료를 녹이면서 결국 모든 재료를 태울 때까지 화재가 이어진다.
예를 들어 배터리 첫 충전시 음극재 표면에 만들어지는 얇은 막인 고체전해질계면(SEI)은 60~130도의 열에 녹는다. 분리막은 120~160도, 양극은 130~250도에서 녹는다. 전해질은 230~350, 음극과 전해질은 230도 이상에 녹는다. 따라서 외부 충격이나 단락 등의 이유로 배터리 셀 내부에서 고열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SEI부터 녹고 이 때 발생한 열로 온도가 오르면서 분리막, 양극, 전해질, 음극 등이 차례로 녹으면서 급속히 화재를 키우게 된다. 오 교수는 “특히 양극은 대부분 산화 금속 성분이기 때문에, 화재가 시작되면 산소를 발생시켜 화재를 촉진한다”고 말했다.
더구나 전기차 등의 배터리 팩은 여러 모듈로 구성돼 있고 다시 모듈 내부에 다수의 셀이 들어 있는 구조다. 직렬 병렬로 연결된 채 팩 안에 들어 있는 전체 셀의 수는 수천 개에 이른다. 하나의 셀에 불이 나면 셀 사이에도 순차적으로 열이 전파되며 화재가 커진다. 모듈은 서로 떨어져 있어 열폭주 시 살짝 시간 지연이 있지만, 이마저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전파 속도가 빨라진다.
나 연구사는 전기차 화재 특성 가운데 ‘수평 화염’을 강조했다. 전기차는 배터리팩에서 화재가 시작되는데, 팩은 상부가 밀폐돼 있다. 따라서 측면을 통해 압력이 배출되고 마치 화염이 분사되듯 수평으로 불이 뿜어 나온다. 이 경우 천장의 화재 감시기가 감지하기 어렵기도 하고, 옆에 다른 차가 있을 경우 순식간에 화재가 전파된다. 특히 전기차가 옆에 있을 경우엔 고열에 의해 금세 불이 붙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 연구사는 “이런 식으로 3~4대가 한꺼번에 불이 나면 불을 끄러 접근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전해질이 탈 때 배출되는 가연성 물질도 문제다. 오 교수는 “전해질이 녹을 때 수소와 함께 가연성 물질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나 연구사는 “가연성 물질에 바로 불이 붙지는 않지만, 밀도가 높아지면 불이 붙고 크게 폭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인천 청라 사태 때도 연기가 난 뒤 갑자기 불이 붙은 경우다. 가연성 가스가 있다면 화재나 폭발 위험이 있어 대피해야 한다. 나 연구사는 ”다만 가연성 가스를 물로 희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어 소방 시에는 물을 뿌리면서 접근한다”고 말했다.
3. 전기차 화재 끌 수 있나… 물 냉각이 최선
나 연구사는 “전기차 화재는 끌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조건이 있다. “골든타임(적절한 시간 안에) 내에 끈다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전기차 화재는 화재라기보다는 (화학) 반응이라고 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이 나는 것이 배터리 내부가 녹는 연쇄 반응이므로, 이 반응을 중시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반응을 중지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물로 냉각시키는 것이다. 배터리의 열 전도를 늦추고 온도를 낮춰 모듈과 모듈 사이 전파를 막는다. 소화기로는 끌 수 없다. 차량을 덮어서 불을 끄는 질식 소화 덮개 역시 가연성 가스를 배출시켜 폭발 위험이 남아 있고, 냉각이 되지 않아 재발화가 일어나 불을 끄지 못한다.
나 연구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초기 골든 타임에 냉각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 시기를 지나면 열 폭주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이 때부터는 끄지 못하고 지연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4. 대안은 없을까…완충 피하고 주차장, BMS 개선 필요
도칠훈 한국전기연구원 차세대전지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소방 방책을 수립하고 충전을 90% 정도까지만 하는 방법으로 과충전을 피해 안전 사회를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로는 불연성 배터리를 사용하도록 하고 충분한 안전을 보장하는 검증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차량 이용자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대안은 충전 환경을 관리하는 것이다. 도 교수는 “저온 충전과 급속 충전이 위험하다”며 ”가능하면 완속으로 상온에서 충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배터리를 꽉 차게 충전해두고 쓴다는 생각을 버리고 필요할 때 충전해 쓰는 방식으로 발상을 바꿔야 한다”며 “이게 가장 안전하게 쓰는 방법임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배터리 완충을 자제하라는 의견에 대해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업계는 이미 BMS에 완충이 되지 않게 여러 단계의 안전율(마진)이 설정돼 있어 무용한 주장이라고 주장한다. 과충전이 꼭 화재의 원인은 아니며 완충을 막는다고 사고율이 낮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화재는 배터리 결함이나 외부 충격이 주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계속해서 사고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배터리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여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완충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 제안이다. 또는 아예 설계 시 마진을 더 높여 현재보다 충전을 덜 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나 연구사는 “배터리 결함 때문에 화재가 날 수 있지만 ,현재 품질 검사를 통과하고 나온 세계적 대기업 제품에서도 화재가 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결함이 섞여 있다는 뜻“이라며 “현 상황에서 BMS가 역할을 해도 해도 수십 개 배터리팩 내 수십 개 모듈에 모두 센서가 있지 않아 현실적으로 완벽한 모니터링은 어렵다. 더 기술이 올라갈 때까지는 아예 설계 마진을 좀 더 높이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은 배터리 셀 수가 늘고 병렬로 많이 연결될수록 관리 성능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고 나 연구사는 말했다. 또 안전을 위해서는 BMS를 대폭 확충하고 개선해야 하는데, 배터리 가격에 영향을 미쳐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오 교수는 “중국이 최근 BMS 없는 배터리를 저가에 공급하며 공격적으로 시장을 확장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선뜻 투자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며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기업이 전략적으로 관련 연구를 하도록 국가가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밖에, 지하주차장 화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주차장 구조를 바꿀 필요도 있다. 오 교수는 “전기차 주차장을 지상에 옮기는 게 가장 좋지만, 어려울 경우 전기차 주차장 사이에 격벽을 만들어 주변 차로의 확산을 막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터리 완충을 자제하라는 의견에 대해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업계는 이미 BMS에 완충이 되지 않게 여러 단계의 안전율(마진)이 설정돼 있어 무용한 주장이라고 주장한다. 과충전이 꼭 화재의 원인은 아니며 완충을 막는다고 사고율이 낮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화재는 배터리 결함이나 외부 충격이 주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계속해서 사고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배터리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여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완충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 제안이다. 또는 아예 설계 시 마진을 더 높여 현재보다 충전을 덜 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나 연구사는 “배터리 결함 때문에 화재가 날 수 있지만 ,현재 품질 검사를 통과하고 나온 세계적 대기업 제품에서도 화재가 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결함이 섞여 있다는 뜻“이라며 “현 상황에서 BMS가 역할을 해도 해도 수십 개 배터리팩 내 수십 개 모듈에 모두 센서가 있지 않아 현실적으로 완벽한 모니터링은 어렵다. 더 기술이 올라갈 때까지는 아예 설계 마진을 좀 더 높이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은 배터리 셀 수가 늘고 병렬로 많이 연결될수록 관리 성능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고 나 연구사는 말했다. 또 안전을 위해서는 BMS를 대폭 확충하고 개선해야 하는데, 배터리 가격에 영향을 미쳐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오 교수는 “중국이 최근 BMS 없는 배터리를 저가에 공급하며 공격적으로 시장을 확장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선뜻 투자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며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기업이 전략적으로 관련 연구를 하도록 국가가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밖에, 지하주차장 화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주차장 구조를 바꿀 필요도 있다. 오 교수는 “전기차 주차장을 지상에 옮기는 게 가장 좋지만, 어려울 경우 전기차 주차장 사이에 격벽을 만들어 주변 차로의 확산을 막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5. 중장기적으론 배터리 고도화가 길
센서를 늘려 발열이 일어날 때 초기에 감지해 화재로 이어지지 않게 막는 열관리시스템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화재 진압보다, 화재 전에 멈추는 게 더 쉽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를 이용해 화재만 집중적으로 탐지하는 시스템도 연구되고 있다. 열폭주 확산을 막기 위한 초기 대응 및 소화 기술도 국내외에서 연구 중이다.
배터리 자체의 안전성을 높이는 연구도 지속돼야 한다. 도 책임연구원은 “(배터리 연쇄 반응을 막기 위해) 재료 중 전해액과 분리막을 불연성이나 난연성으로 대체할 수 있다”며 “다만 기존 공정을 개선해야 해 원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아가 완전히 불연성인 세라믹 고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고체 전해질은 현재 불연성 전해질보다도 1000배 이상 비싼 수준이다.
배터리의 발화점을 높여 화재 가능성을 줄이는 연구도 있다. 분리막 등에 나노코팅을 해 발화점을 높이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배터리의 발화점을 높여 화재 가능성을 줄이는 연구도 있다. 분리막 등에 나노코팅을 해 발화점을 높이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기자상을 수상한 과학전문기자입니다. 과학잡지·일간지의 과학담당과 편집장을 거쳤습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인류의 기원(공저)' 등을 썼고 '스마트 브레비티' '화석맨' '왜 맛있을까' '사소한 것들의 과학' '빌트' 등을 번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