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 과장된 불안보단 차분한 대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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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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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인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자동차 화재 사고로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었다. 불안감과 공포를 반영하듯, 1일 이후 ‘전기차’ 또는 ‘전기자동차’와 ‘화재’를 동시에 포함하는 기사의 수도 급증했다. 전기차 화재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널리 회자되는 전기차 안전 문제지만, 도시 인구밀도가 높고 공동주택 거주 비율이 높은 한국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인식되는 위험성과 실제 위험성이 항상 비례하지는 않는다. 국내 중앙일간지와 경제지, 전문지, 방송에서 전기차나 전기자동차, 그리고 화재를 포함하는 기사를 모두 모아 분석해보면 두 차례에 걸쳐 전기차 화재를 바라보는 국내의 인식이 바뀐 사건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은 실재 사고의 증가와는 관련이 없다.
국내 중앙일간지와 경제지, 전문지, 방송에서 전기차나 전기자동차, 그리고 화재를 포함하는 기사를 모두 모아 분석해보면 두 차례에 걸쳐 전기차 화재를 바라보는 국내의 인식이 바뀐 사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데이터 빅카인즈, 그래픽 윤신영 alookso 에디터
하나는 2020년 10월 발생했던 현대 전기차 코나 화재와 리콜 사태다. 2017년 출시 이후 꾸준히 화재가 보고되던 코나에 대해 국토교통부가 리콜을 발표했다. 때마침 진행되던 국정감사까지 맞물리며 많은 기사가 나왔다. 이전까지 전기차 화재 관련 기사는 매우 적었는데, 이 사태 이후 전기차 화재는 기사에 매월 일정량 이상의 기사가 꾸준히 나오는 단골 소재가 됐다. 

하지만 단지 기사만 늘어난 게 아니다. 텍스트 분석을 해보면, 이 때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전까진 개선, 혁신, 예방, 사업, 실적 등 기술적 안정성과 산업적 우수성을 언급한 단어가 기사에 많이 등장했고, 감성 분석을 해봐도 긍정적 감정의 기사가 대세였다(아래 왼쪽. 파란색이 긍정적 감성의 기사와 단어). 전기차 화재는 가시권에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리콜 사태 이후 분위기가 반전됐다. 불안 공포 손해, 걱정 등 부정적 어휘가 주도하는 부정적 감성의 기사로 톤이 역전됐다(아래 오른쪽).

두 번째로 판이 바뀌는 ‘상전이’가 바로 이달 1일 발생한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다. 전례 없이 기사 수가 뛰었다. 뿐만 아니라 다시 한번 전기차에 대한 언론의 부정적 인식이 극단적으로 치솟았다. 2020년 10월 이후 긍정적 인식에서 부정적 인식으로 전환이 이뤄졌지만, 그래도 부정적 기사의 비중이 극단적이진 않았다. 사태 뒤 2년이 지난 2024년 초~7월 31일 상황만 보면, 부정적 감성의 비중은 다시 조금 줄고 긍정성의 비율이 는 상태였다(아래 왼쪽. 보라색이 긍정적). 

하지만 이번 사고로 완전히 상황이 바뀌었다. 부정적 인식이 극단적으로 지배하는 상황이 됐다(아래 오른쪽. 91%가 부정적 기사로 분류됐다). 매체의 기사가 곧 대다수 여론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사의 소재와 내용은 대중의 관심사를 반영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나온 기사 역시 다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기사의 주된 분위기와 대중의 정서는 비교적 가깝다고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전기차에 대한 극단적 불안감은 이미 여러 아파트 단지나 건물에서 전기자 주차를 제한하자는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안전과 관련한 부정적 인식은 때로는 실제 상황을 가린다. 쉽게 꺼지지 않는, 통제가 어려운 ‘열폭주’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 사례로 접한 뒤엔 더욱 그렇다. 이럴 때일수록 정확한 사고 관련 통계를 보고 현황을 냉정하게 참고할 필요가 있다.
8월 1일 사고 이후 기사의 상대 출현 단어 네트워크를 분석했다. 주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두드러진다. 사고 자체와 배터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가운데, 지하 주차장과 스프링클러, 충전소 설치 등의 이슈가 산발적으로 보인다. 윤신영 alookso 에디터


통계

전기차 화재를 정확히 추적하는 나라는 많지 않지만, 일부 국가와 기관이 추적중이다. 이에 따르면,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의 화재 비율은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낮거나 적어도 비슷하다.

스웨덴 민방위청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말 스웨덴에서 운행중인 전기차 또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는 2021년 45만대에서 2022년 61만 대, 2023년 75만 4776대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에 발생한 전기차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승용차) 화재는 각각 24, 23, 38건이었다(전기 트럭 사례도 일부 있지만 매우 소수다). 연평균 비율로 따지면 0.002~0.01%가 화재를 겪는다. 반면 내연기관차는 같은 기간 453만~422만 대가 운행됐으며, 2023년의 경우 약 3460건의 화재를 겪었다. 0.8%다. 전기차의 화재 비율이 내연기관차의 수십 분의 1 수준이라는 뜻이다(아래 그래프. 파란색이 전기차, 빨간색이 내연기관차의 화재율이다).
데이터 MSB, 그래픽 윤신영 alookso 에디터
스웨덴 민방위청은 화재 발생 상황도 기록했다. 2018~2023년 6년간 발생한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차 화재는 총 120건이었으며 25%(30건)가 충전중, 20%(24건)가 운행 중 화재로 이어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호주의 응급 구조 단체 EV파이어세이프의 통계도 비슷하다. 2010년부터 2024년 6월까지 전 세계에서 발생한 전기차 배터리 열폭주 사고 사례를 511건 집계했다. 이는 전 세계 전기차 수(국제에너지기구(IEA) 2023년 기준. 4000만 대)와 비교하면 0.001%에 해당한다. 화재 발생 상황은 23%가 운행 중 사고나 충돌이었으며, 배터리 결함이 9%, 침수가 5% 순이었다. 역시 절반 이상은 원인 불명이었다.

한국도 4월 소방청이 밝힌 차량 화재 현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1~2023년 내연기관차 화재는 매년 3500~3700여 건씩 발생하고 있으며 전기차는 같은 기간 매년 24~72건 발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2023년 말 자동차 등록 현황을 보면 내연기관차(휘발유, 경유, LPG)가 2365만 대, 전기차는 54만 4000대다. 하이브리드 차량 화재제외하고 전기차 기록만으로 2023년 화재 발생률을 하면, 내연기관차는 0.017%, 전기차는 0.013%다. 내연기관차와 비슷하거나 약간 낮다. 스웨덴 및 호주처럼 하이브리드차량을 전기차에 포함해서 계산하면, 이 수치는 0.003%로 더 떨어진다. 상황 별로는 화재 발생 상황은 운행중이 49%로 가장 많았고, 주정차중(29%), 충전중(19%)이 뒤를 이었다.


폐쇄 공간의 전기차

장기간 수많은 차량을 밀폐 공간에 적재한 채 고립된 바다 위를 운행해야 하는 해운업계와 해상보험업계는 전기차량의 화재에 누구보다 민감하다. 그런데 국제해상보험연합(IUMI) 역시 지난해 9월 전기차 운반선의 화재에 관한 보고서를 내며 내연기관차보다 화재를 더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보고서는 “전기차의 화재가 기존 차량의 화재보다 특별히 위험하지 않다”며 “같은 거리를 주행할 때 전기차에 의한 화재가 기존 차량에 의한 화재보다 적다”고 적었다. 

충전 과정에서 일부 화재가 발생해 충전소에 대한 거부감도 크지만, IUMI는 심지어 선박에서의 충전도 막을 필요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충전시 배터리 안전을 위한 장치도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IUMI가 주의해서 선적해야 한다고 본 대상은 중고차뿐이었다.

화재시 발생하는 열이 문제라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직접 차량에 화재를 발생시킨 실험 결과를 보면, 발생하는 열 에너지는 내연기관차나 전기차나 비슷했다. 한국에서 이뤄진 실험 결과 역시 비슷했다(여기서는 내연기관차가 오히려 조금 더 높았다). 다만 전기차는 화재가 느리게 진행됐고, 일단 시작하면 진화가 어려우며 소화 뒤에도 재점화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는 차이가 있었다. 내연기관차는 화재가 빨리 발전했지만 진압도 빨리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연료 탱크가 손상돼 가솔린이 유출될 경우 화재 면적이 늘고(개방 공간 액면 화재) 열 방출도 커지는 단점이 있었다. 주변 차량으로 화재가 번질 가능성은 오히려 내연기관에서 더 컸다.

요약하면, 기록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전기차의 화재 발생률은 내연기관차보다 높지 않았다. 오히려 크게 낮게 평가된 경우가 많다. 화재시 온도는 비슷하거나 내연기관차가 높았고, 주변으로의 확산 특성도 전기차가 특별히 더 위험하지 않았다.

다만 전기차는 한 번 불이 나면 고열의 열폭주가 일어나 끄기 어렵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필요한 물의 양이 100배 많다. 특히 주정차나 충전 중 불이 날 경우 운전자의 통제 밖에서 화재가 발생하기 때문에 훨씬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사람은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을 다른 위험보다 더욱 위협적으로 느낀다. 

더구나 한국은 인구가 밀집된 도시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고, 공동주택이나 고층빌딩에 거주하는 사람도 많다. 주차장 상당수가 지하나 폐쇄된 공간에 존재하는데, 전체 전기차 화재 발생의 절반이 주정차나 충전 중 발생한다니 걱정이 커질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무엇을 할 것인가

하지만 이것은 통계의 속임수다. 중요한 것은 차량 중 화재 수이지 발생한 화재 중 절반이 주정차나 충전 중 발생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사고가 나지 않는 대부분의 차도 주정차 또는 충전 상태다. 대부분의 차는 운행시간보다 주차 또는 충전 시간이 훨씬 길다.

결국 전기차의 발화 자체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자주 발생한다고 믿을 근거는 없다. 전기차 주차 공간의 위험성도 상당히 과장돼 있다. 하지만 내연기관차보다 낮은 확률일지라도 한 번 불이 나면 끄기 어렵기에 이에 대한 대비는 필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히 차량 충전소와 주차장을 실외에 설치하는 것이지만, 한국의 도시처럼 밀집도가 높은 곳에서는 공간을 충분히 마련하기 어렵다. 더구나 전기차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지하나 밀폐된 건물 공간에서 피해를 줄이고 화재를 조기에 진압할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가장 기본은 흔히 스프링클러라고 부르는 소화 시스템이다.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모두 화재가 확산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 효과가 크므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번 청라 화재는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영향이 컸다. 실험 결과를 보면, 스프링클러는 차량 표면 및 그 위 가스 온도도 빨리 낮췄고 전반적인 화재 열 방출도 낮췄다. 주의할 점은, 물을 너무 일찍 꺼선 안 되고 충분히 뿌려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화재예방협회(NFPA) 역시 배터리가 중첩된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안전을 위해 스프링클러를 의무 설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발생하는 유독가스를 배출하기 위한 시설도 중요하다. 그밖에 고팽창 폼 소화장비는 차량 사이에 열 전달을 늦추는 데 효과가 있었다. 

건물 지하와 같은 주차 공간에는 몇 가지 다른 설계가 필요하다. 주차장 차량 간 거리를 확대하고 천장 높이를 높일 필요가 있다. 스페인의 전기차 지하주차장 설계 대책을 연구한 논문에서는 파량 사이에 3m 이상의 간격을 제안하고 주차 공간의 벽과 천장은 화재에 두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내구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는데, 어느 정도가 한국 상황에서 현실적일지는 논의가 필요하다.

또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비디오 모니터링 시스템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열 화상 카메라와 인공지능(AI) 기반 시스템도 사용할 수 있다.

유럽연합에서는 실내 주차장의 전기차 화재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한국도 한국 상황에 적합한 연구가 필요하다.
 


다른 위험들

전기차가 위험한 것은 화재가 아닌 다른 특징이라는 주장도 있다. 징웬후 미국 미시건대 교수는 호주 미디어 ‘더 컨버세이션’ 기고에서 “전기차는 바닥에 배치된 배터리팩의 무게 덕분에 안정성이 높다”며 “위험한 전복 사고가 잘 일어나지 않아 운전자와 탑승객을 보호하는 데 유리한 반면, 같은 이유로 사고시 상대 차량에게 더 많은 충격 에너지를 주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무거운 전기차가 많아질 경우 도로나 주차 건물 등 인프라의 구조에 미치는 하중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조용한 전기차가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도 있다. 필 에드워즈 영국 런던위생열대의학대학원 교수가 학술지 감염병과 지역 건강에 발표한 올해 논문에 따르면,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차가 보행자 충돌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은 두 배 높았고, 특히 도시에서 더 위험했다. 

 

차분한 대응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그 기술이 미칠 긍정적 효과와 함께 부정적 파급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늘 강하게 나온다. 전기차도 비슷하다. 특히 큰 피해를 낸, 통제하기 어려운 화재 소식은 대중에게 새 기술의 부정적 인식을 강화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데이터로도 화재 발생 가능성은 기존 내연기관차에 비해 높지 않다. 과도한 걱정은 금물이다. 전기차 화재는 대안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지 전기차를 피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화재 발생 비율을 계속 추적하고 화재 확산 방지 기술을 확보한다면 충분히 안전한 교통수단이 될 수 있다. 전기차와 주차 공간에 대해 과도하게 터부시할 필요가 없다.
전 세계 전기차 연도별 누적 보급 대수. 세로축 단위는 백만이다. 2023년 4000만 대를 넘어섰다. IEA
전기차로의 전환은 이미 늦추기 어려운 대세다. 전기차 보급에 가장 적극적인 중국은 7월, 사상 처음으로 전체 판매 차량 가운데 전기차의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51.1%). 국제에너지기구는 4월 발표한 ‘글로벌 전기자동차 개요 2024’ 보고서에서 2030년이면 중국의 운행 자동차의 3분의 1, 미국과 유럽 운행 자동차의 5분의 1이 전기차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미 2024년 전 세계에서 판매될 신차 가운데 1700만 대(20% 이상)가 전기차일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의 1400만 대(18%)를 훌쩍 뛰어넘는 수다.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전기화가 강화돼야 하고, 전기차는 그 첨병이다. 전기차 수가 늘어날 것이고, 화재 사고도 늘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기존 내연기관차에 비해 공포를 느낄 만큼은 아니다. 사태를 차분하게 이해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대책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다.

by 윤신영 alookso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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