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를 부탁해

시랑
시랑 · 요지경에서 근무
2023/09/19

눈을 떠 고개를 돌려보니 따가운 햇살, 반쯤 창문을 가린 암막커튼, 언제 켰는지 기억 안 나는 검정색 티비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오랜만에 햇살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간밤에 어떤 비명을 들었던 게 기억났지만,  평화롭게 침대 밑에서 꿈나라를 산책하고 있는 개들을 보니 간밤의 소리는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침대에서 일어나자 내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강아지 두 마리는 꼬리를 흔들며 방안을 깡총깡총 뛰어다녔다. 사료 봉지를 들고 와 각자의 그릇에 담아준 뒤, 다 먹었는지 확인을 하고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아래층으로 연결된 계단을 헤아리다 보면 어느새 아래층 작업실에 도착한다. 

작업실은 좁은 일방통행 대로변에 있다. 많은 차들과 대형 마을버스가 지나다닌다. 처음엔 자동차의 소음이 적응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소음에 무신경해진다. 소음을 차단하지 않으면 집중력이 분산된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책상에 앉아 한 시간쯤 지나니 햇살이 사라지고, 후드득 창문을 두드리며 거친 비가 떨어졌다.
 
잘 풀리지 않던 단락을 보다 급 피로해진 나는 눈을 쉬기 위해 안경을 벗고 창문으로 향했다. 창밖의 무채색 하늘에 휜 안테나가 서있다. 그 아래는 붉은 벽돌 건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놀란 표정으로 손바닥으로 머리를 가린 채 정신없이 달려갔다. 시간이 잠시 흐르고 난 뒤, 나는 그날의 풍경이 어딘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검은 물체 하나가 건너편 문 앞에 놓여 있었다. 처음엔 검정 비닐이라 생각했는데 비닐이라고 하기엔 뭔가가 달랐다. 창문 앞까지 바짝 다가가 유심히 살펴봤는데, 검정 비닐이 아니라 검정 실타래로 보였다. 하지만 실타래가 왜 저기에…아닌가? 그렇다면 혹시 털? 음… 털이라면… ‘까마귀? 아니면... 개? 그것도 아니면 고양이?’  길가에 개나 고양이가 저렇게 쓰러져있다고? 더욱이 고양이라면 차가 많이 다니는 곳에서 경계를 풀지 않을 리가 없는데… ‘혹시 죽은 고양이 인가?’

작년 가을부터 작업실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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