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는 내가 20대 초반이던 시절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래서 당시 방학이던 난 간병을 하게 됐었는데 처음 간병인으로 당황했던건 변이 묻은 병원복은 어떻게 갈아입혀야 할지 소변은 언제 갈아야 할지 등 아무것도 몰라 답답했다.
이런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엔 '간병인 비싸니 가족이 돌보는게 당연하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엄마 병이 생각보다 빨리 안낫으니 점차 나의 감정은 두려움과 답답함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간병은 사실 몸이 엄청 힘들지 않았다. 시간 맞춰 부모님의 몸을 움직이고 옷을 갈아주고 씻겨주기만 하면 되지 여느 공장알바보다 식당알바보다 고되진 않았다.
힘들었던건 병이 낫지 않을지도 모르는 두려움과 점차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오는 병원비, 그리고 그 상황에 끼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제...
이런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엔 '간병인 비싸니 가족이 돌보는게 당연하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엄마 병이 생각보다 빨리 안낫으니 점차 나의 감정은 두려움과 답답함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간병은 사실 몸이 엄청 힘들지 않았다. 시간 맞춰 부모님의 몸을 움직이고 옷을 갈아주고 씻겨주기만 하면 되지 여느 공장알바보다 식당알바보다 고되진 않았다.
힘들었던건 병이 낫지 않을지도 모르는 두려움과 점차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오는 병원비, 그리고 그 상황에 끼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제...
생각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웨덴의 영 케어러 인터뷰 중에도 같은 말이 나오더라고요. 그 상황에 끼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힘들다는 얘기요. 간병은 공공에서 상당부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자의 건강은 물론이고, 다른 구성원의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것이 결국 사회에 생산적이니까요. 일자리 창출의 관점에서도요.
생각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웨덴의 영 케어러 인터뷰 중에도 같은 말이 나오더라고요. 그 상황에 끼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힘들다는 얘기요. 간병은 공공에서 상당부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자의 건강은 물론이고, 다른 구성원의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것이 결국 사회에 생산적이니까요. 일자리 창출의 관점에서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