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6
인간에게 가치는 성역화되기 마련입니다. 성역화란 어떤 가치가 맞으니까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고, 비판은 허용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여자가 뭔가 배우면 안되고,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들과 축구를 하면 뭐라하던 과거의 어르신들이 그렇죠.
개인적으로 성역화된 가치는 쓰레기라고 생각합니다. 의심할 수 없는 것이라면 가치가 아닌 진리라고 불려야 마땅하겠죠. 가치는 그것이 비판당하고, 새로운 가치를 낳을 때에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가치는 성역화되면 안되거든요. 카타르는 지금 가치를 성역화시키려는 것 아닌가요?
개인적으로 성역화된 가치는 쓰레기라고 생각합니다. 의심할 수 없는 것이라면 가치가 아닌 진리라고 불려야 마땅하겠죠. 가치는 그것이 비판당하고, 새로운 가치를 낳을 때에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가치는 성역화되면 안되거든요. 카타르는 지금 가치를 성역화시키려는 것 아닌가요?
카타르 월드컵의 본질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죠. 성소수자의 인권을, 다양성과 평화를 지지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축구에 끼워넣는 것은 옳은가? 축구경기가 언제부터 정치적신념을 들어내는 정치판의 연장선...
저도 즐거웠습니다. 제 부족한 머리로는 세상을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그 결과 나온 표현이 '중도'인 것 같습니다. 세상은 하나만 맞을 수 없다보니까요. 언젠가 더 나이를 먹고, 더 지혜로워진다면 주관이 더 강해질 수도 있겠죠.
현대 이슬람의 탄압은 개인적으로도 안타까운 사례중 하나입니다. 개혁정권이 물러나고 과거로 회귀해버렸죠 그러나 변화란 것이 그렇게 단순히 억누른다고 막아지는게 아니라 배웠기에. 언젠가 달라진 이슬람 문화권을 볼 수 있겠죠. 결국은 시간이네요. 더 지혜로워질 저도, 나아질 이슬람 문화권의 모습도.
토론 즐거웠습니다. 놓칠 수 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즐거운 대화가 마지막에 아주 안타까운 결말에 다다랐군요.
저는 중도 무용론자 입니다. 뭐 그렇다고 진보주의자도 아니진요. ㅎㅎㅎ
농담입니다. 아주 즐거웠습니다.
ps. 현대 이슬람 문명권의 여성탄압의 역사는 30년 내외로 생각보다 짧습니다. 친미정권이 물러나고 전통주의 극우세력이 집권하면서 형성한 문화지요. 결국 역사와 전통의 연속성이란 꽤나 부질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곤 합니다.
이번 답변을 쭉 읽어봤는데, 잠시 잊고 있던 사실들 몇개를 짚어주셨습니다. 아주 핵심만요. 저도 즐겁네요.
1. 사실 인어공주는 덴마크 동화이고, 뭐 과학적으로 들어가면 심해에 사는 어인이 어떻게 피부가 까만색이냐? 비타민D부족으로 죽었을 것이다 라는 우스갯 소리가 있더라고요. 이 부분은 장난스럽게 표현했지만 사람들이 인어공주 캐스팅에 분노한 이유는 기존의 IP에 PC를 덧씌운다는거죠. 어찌보면 동화에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게 존재합니다. 고전이니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읽어왔기에 그 전형성이라는 게 있다는말이죠.
흑인 홍길동, 백인 변사또가 없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이미 그런 공감대가 있는데, 굳이고 원작을 파괴하면서 이걸 넣어야하는가? 라는 의문에서 분노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PC라는 올바르다 생각하는 의도를 동화에 주입한거니까요. 너무 뻔히 보이는 방식으로 말이죠. 사실 이건 핵심은 아닌데, 그냥 제 생각을 쓰고 싶었습니다 ㅎㅎ
2. 맞습니다. 사회계약설도 결국은 인권에 기초하고 있죠. 인권이 정치보다 크다? 이것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인간이 이룬 사회는, 아니 현대의 법치사회는 인권의 기반위에 지어졌기때문이죠. 하지만 인권에 대한 해석으로 싸우죠. 대법원판례도 인권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인권이라는 것의 범위를 정할 뿐이죠. 또한 사람들의 인권이 부딪히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것을 조정합니다. 인간답게 살수 있는 권리인 인권, 그중의 환경권을 보자면 저의 조망을 위해 높은 건물을 지어 옆 건물의 입주자들의 조망을 해칠 수 없습니다.
어라? 정치가 분명 인권위에 지어졌는데 어떻게 정치와 법이 인권의 범위를 정하죠? 인권이 더 큰 개념이고 법보다 고등의 계약인데요? 이는 인권이라는 개념이 아주 자의적이기 때문입니다. 전 인권이 자연상에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사회에서만 존재하죠. 앞서 사용한 비유지만, 사자는 인권을 존중하지 않죠. 그러나 인권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평등권, 사회권, 자유권과 같은 파생된 권리를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사회의 유지를 위해선 인권은 다소 포용력있는 개념으로 남아야하죠. 법이나 정치보다는 크고 고등하지만, 법이나 정치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는 개념. 그래야 사회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는 웅보님의 말은 아주 맞습니다. 정론에 가깝죠. 동의합니다. 다만 제가 말한 인권은 PC주의 같이 정치권에서 일종의 무기처럼 휘두르는 '인권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이 만들어낸 무언가'를 일컫는 거였습니다. 그런 건 정치적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겠죠.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은 그 지역의 무언가가 이유없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슬람이 돼지는 먹지 않는 것은 이슬람의 기후가 돼지를 키우기 적합하지 않았기에 종교적인 금기로 정해 막았다는 설이 아주 유력하듯이요. 그렇기에 외부의 입장에서 그것을 입맛대로 뜯어 고친다면 제국주의와 다를게 없습니다. '사회 진화론'이라는 끔직한 사상인 것이죠. 물론 현실은 제가 쓴 글처럼 극단적이진 않습니다. 로마법에 따르라는 말과,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긍정할 것만 긍정해라 라는 말은 결국 같은 말이거든요.
더 나은 사회와 선택을 위해서.
그것을 위해 그들이 그 지역, 환경에서 정주하며 쌓은 관념, 전통을 부정하지 말라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전통이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죠.
결론은 뭐... 뻔하죠. 중도를 잘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점점 더 즐겁네요. 저만 그런 것은 아니기를.
1. 저도 정말 심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이번 인어공주 캐스팅이 정말 어색하고 싫습니다. 너무 슬퍼요. 그러나 그것을 의견으로 개진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이 싫다 라는 것은 의사표현입니다. 이것이 의견이 되려면 그것이 왜 나쁜지 잘못되었는지 합당한 근거와 논지를 갖추어야하죠. 더군다나 그 대상이 이미 특정 이데올로기를 표방하고 있다면 그 이데올로기의 메커니즘과 싸워야 합니다. 저는 pc한 사람도, 인종차별주의자도 아니지만, 적어도 인어공주 캐스팅의 옳지 않은 점을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습니다.
2. 인권은 정치를 견인합니다. 여러 이유로 억압 되어있던 인권 요구가 사회 변화에 따라 수면위로 올라오며 사회적 변화를 위해 정치를 조작하지요. 따라서 인권은 정치가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정치가 인권을 위한 도구는 될 수 있지만요.
인권 정치 법 모두 사회적 계약에 해당합니다. 사회적 계약은 각 유형의 성질이나 언어의 구체성 등에 따라 차등이 생기지요. 인권은 법보다 고등한 사회계약입니다. 따라서 인권적 옳고 그름은 정치적 판단 위에 서지요.
인권에 대한 입장은 찬성이나 반대로 나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충분히 옳기 때문에 내가 그 가치를 삶에 받아들여 적용할 것인지, 뒤쳐진 채로 남아있을 것인지의 선택지만 남지요.
3.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구절은 현대 사회에서 다소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각자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존중해줄 필요는 있지만, 이미 전세계적으로 정립된 옳은 가치에 대해서 나 홀로 버티는 것은 고집이고 아집이지요.
직접 개입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사실 이미 그런 논의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개입은 직간접적으로 또한 실시간에 걸쳐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히잡에 갇힌 여성이 지구 반대편 비키니 입은 여성의 sns를 보는 것만으로도 개입이라면 개입이겠지요.
아주 뛰어난 반박입니다. 이 반박에 답변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이 기쁘네요.
먼저 1번의 문제부터 답변해볼까요? 성역화라는 명명은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릴때 배우던 도덕과 가치들이 과연 옳을까요? 도덕이나 가치들은 끊임없는 의문들을 극복하며 버텨야합니다. 그러다 어떤 의문에 스러진다면, 그 가치와 도덕은 '옛날의 것'이 되어버리죠. 하지만 현재는 도덕적인 이야기들을 한다고, 그것에 대해 부정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지탄합니다. 소위 PC라고 부르는 정치적 풍조이죠. "덴마크 동화인 인어공주를 어째서 흑인 배우가 연기하는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전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립니다. 모든 곳에서 그렇진 않지만 현재 사회 곳곳에서 극단주의자 팽배해있다는 것은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성역화라는 명명화는 필요합니다. 이름을 붙여주어야, 좀 더 와닿고 그것을 깨 부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성역화라는 단어는 문제를 인식하게하고, 오히려 소통을 부추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통의 단절이 아니라요. 그렇게 되면 인간은 반발심리로라도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죠.
2번의 경우에는 동의가 약간 어렵습니다. 인권은 결국 정치와 뗴어 놓을 수 없습니다. 흑인의 인권을 위해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난 것도, 보편적 인권을 위해 프랑스에서 다소 폭력적인 혁명이 일어나 의회가 생긴 것도 인권이 정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나아가 경제와도 연관이 있고요. 사회에서 정치가 가지는 힘은 강력합니다. 정치에서 받아지는 이념은 '제도'라는 방식으로 사회에 통용되죠. 성소수자를 정치권에서 받아들인다면, 제도적으로 성소수자들의 결혼이 인정될 것이고, 그들또한 보편적인 부부와 마찬가지로 제도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겠죠. 그렇기에 인권은 정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띕니다. 애초에 인권이라는 것 자체가 정치와 법에 기반한 가치이기 떄문입니다. 자연어디에도 인권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오직 정치와 법위에 존재하는 가치입니다. 절대 필연적이지 않습니다. '넌 인간이니까 안 잡아먹을게' 라고 말하는 배고픈 사자는 없는 법이죠.
토론의 원문에서는 카타르에 무지개가 금지되었다는 말이 없어서 잘 몰랐네요.. 카타르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월드컵이고, 카타르의 입장에선 우린 '외부인' 입니다. 외부인들이 자신들의 체제를 망가뜨리기 원하지 않았겠죠. 이 부분은 당연히 비판의 여지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새로운 가치들이 등장하고 바뀌겠지요. 아랍에서 히잡반대 운동이 일어나는 것 처럼요. 그것에 저희가 낄자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그들 주도로 바뀌어야 혁명이지, 저희가 끼어들면 그것은 문화적 간섭이니까요. 일본 극우의 주장을 보십쇼. 그들은 일제강점기로 인해 한국이 발전한 것이라 주장하지 않나요? 완전히 같은 예는 아니지만, 그런 류의 간섭은 옳지 않다는 겁니다. 물론 비판하는 것은 좋다고 봅니다. 저도 공감할 수 없는 가치이니까요.
토론의 원문에서처럼, 축구팀이 무지개 완장을 차는 것에 대해서만 토론한 글 입니다. 원문이 그 내용을 다뤘으니까요.
합당한 수준의 소통이야 당연히 필요하죠. 그것이 전 불가능하기에 성역화라 말한 것 입니다. 최근에야 사람들이 지쳐서 덜하다지만, 몇년 전만해도 사회는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두 극단에서 싸웠습니다. 연예인들이 무슨 말을 하면 미친 듯이 물어뜯죠. 그들에게는 엄청난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합니다. 그들이 공인이라는 이유였죠. 그래서 누군가는 자살을 헀습니다. 이토록 극단적인 사회에서 그 주제를 꺼낼 수도, 토론이 가능할 수도 없었습니다. 토론이라는 것 자체가 아무리 정중해도 하다보면 흥분되고, 기분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전 모든 의견이 성역화라 하지 않았습니다. 대다수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합리적이라면 비판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면 당연히 성역화가 아니죠. 의견을 마구 짓밟을 수 있으니까요. 다만, 어떤 의견을 너무나도 높이 걸어놓고, '저걸 끌어내서 짓밟으면 안돼' 라고 하는 것이 성역화입니다. 아마 성역화라는 워딩에 약간의 오해가 있었나보네요.
좋은 질문 및 의견제시 감사합니다. 덕분에 카타르에 무지개 자체가 출입이 안되는 것을 알게되었네요. 축구만 보다가 관심이 없어 알지 못했을 수도 있는 지식이었습니다.
1.
일부 급진적 가치들을 둘러싼 논쟁이 다소 극단적으로 수세적이고 공격적인 경향성을 보인다는 점에는 공감합니다. 저 역시 소위 성역화 된 가치들과 싸워 버릇하기도 했구요.
그러나 여전히 '성역화'라는 명명은 불필요하며 부적절합니다. 그러한 명명과 함께 더 이상의 소통과 논의의 가능성이 차단되어버리니까요. 되려 해당 가치들에 주어지는 비판이 그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정성껏 반박할 만큼 논리성, 합리성을 갖추었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가치를 주장하는 이들 역시 자신들이 가치의 이상점 이면에 논리적 근거를 잘 설명하고 있는지, 그저 유행처럼 가치를 부르짖지는 않았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구요.
2.
예를 들어, 저는 성소수자 인권 문제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정치적 선택으로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되는, 필수적이고 필연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정치적 노선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 아닌, 옳고 그름의 판단에 따라 그 태도를 결정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FIFA에서도 이전까지는 이러한 지점을 충분히 고려해왔습니다. 2020년 미국 조지 플로이드 과잉 진압 사망사건 당시 이에 추모하는 선수들에 대한 징계에 우려 표시를 했었죠. 당시 FIFA는 정치적 메시지와 인종 차별에 대한 저항을 명확히 분리 구분하여 명시했습니다.
정치적 입장에 따른 주장은 축구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판단은 존중합니다. 하지만 성소수자 인권은 정치적 입장이 아닌 인권의 문제이며, 따라서 그동안 다른 경기에서는 무지개 마크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글쓴이께서 다소 혼용하시는 듯 한데, 현재 상황은 축구장에 무지개 마크가 출입 금지 된 것이 아닙니다. 카타르에 무지개가 출입 금지된 것이지요. 축구장과 정치적 표현의 문제가 아닌, 카타르와 인권 표현의 문제인 겁니다.
3.
제 이러한 주장도 성역화로 보이시나요? 일단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이해당사자도 아니고, 신봉자도 아닙니다. 반대의견에도 얼마든지 답해드릴 용의가 있구요. 성역화라는 엄격하고 단호한 비판이 붙기 위해서는 적어도 상호간에 합당한 수준의 소통을 위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그저 운이 나빠 좋은 소통 상대를 찾지 못하신 것이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 이외에 관광객의 옷차림을 규제한다거나 하는 등의 문제는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글에서 말한 것은 '필드 위' 에서의 이야기 입니다. '옷을 길게 입을 것' 과 같은 규제는 결국 다른 가치의 성역화이겠죠. 이 부분은 종교적인 이야기로 저희가 그 종교를 오래 믿어온 사람들이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울 것 입니다. 결국엔 바뀌겠지만요.
1.
일부 급진적 가치들을 둘러싼 논쟁이 다소 극단적으로 수세적이고 공격적인 경향성을 보인다는 점에는 공감합니다. 저 역시 소위 성역화 된 가치들과 싸워 버릇하기도 했구요.
그러나 여전히 '성역화'라는 명명은 불필요하며 부적절합니다. 그러한 명명과 함께 더 이상의 소통과 논의의 가능성이 차단되어버리니까요. 되려 해당 가치들에 주어지는 비판이 그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정성껏 반박할 만큼 논리성, 합리성을 갖추었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가치를 주장하는 이들 역시 자신들이 가치의 이상점 이면에 논리적 근거를 잘 설명하고 있는지, 그저 유행처럼 가치를 부르짖지는 않았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구요.
2.
예를 들어, 저는 성소수자 인권 문제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정치적 선택으로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되는, 필수적이고 필연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정치적 노선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 아닌, 옳고 그름의 판단에 따라 그 태도를 결정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FIFA에서도 이전까지는 이러한 지점을 충분히 고려해왔습니다. 2020년 미국 조지 플로이드 과잉 진압 사망사건 당시 이에 추모하는 선수들에 대한 징계에 우려 표시를 했었죠. 당시 FIFA는 정치적 메시지와 인종 차별에 대한 저항을 명확히 분리 구분하여 명시했습니다.
정치적 입장에 따른 주장은 축구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판단은 존중합니다. 하지만 성소수자 인권은 정치적 입장이 아닌 인권의 문제이며, 따라서 그동안 다른 경기에서는 무지개 마크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글쓴이께서 다소 혼용하시는 듯 한데, 현재 상황은 축구장에 무지개 마크가 출입 금지 된 것이 아닙니다. 카타르에 무지개가 출입 금지된 것이지요. 축구장과 정치적 표현의 문제가 아닌, 카타르와 인권 표현의 문제인 겁니다.
3.
제 이러한 주장도 성역화로 보이시나요? 일단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이해당사자도 아니고, 신봉자도 아닙니다. 반대의견에도 얼마든지 답해드릴 용의가 있구요. 성역화라는 엄격하고 단호한 비판이 붙기 위해서는 적어도 상호간에 합당한 수준의 소통을 위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그저 운이 나빠 좋은 소통 상대를 찾지 못하신 것이리라 믿고 싶습니다.
이번 답변을 쭉 읽어봤는데, 잠시 잊고 있던 사실들 몇개를 짚어주셨습니다. 아주 핵심만요. 저도 즐겁네요.
1. 사실 인어공주는 덴마크 동화이고, 뭐 과학적으로 들어가면 심해에 사는 어인이 어떻게 피부가 까만색이냐? 비타민D부족으로 죽었을 것이다 라는 우스갯 소리가 있더라고요. 이 부분은 장난스럽게 표현했지만 사람들이 인어공주 캐스팅에 분노한 이유는 기존의 IP에 PC를 덧씌운다는거죠. 어찌보면 동화에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게 존재합니다. 고전이니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읽어왔기에 그 전형성이라는 게 있다는말이죠.
흑인 홍길동, 백인 변사또가 없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이미 그런 공감대가 있는데, 굳이고 원작을 파괴하면서 이걸 넣어야하는가? 라는 의문에서 분노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PC라는 올바르다 생각하는 의도를 동화에 주입한거니까요. 너무 뻔히 보이는 방식으로 말이죠. 사실 이건 핵심은 아닌데, 그냥 제 생각을 쓰고 싶었습니다 ㅎㅎ
2. 맞습니다. 사회계약설도 결국은 인권에 기초하고 있죠. 인권이 정치보다 크다? 이것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인간이 이룬 사회는, 아니 현대의 법치사회는 인권의 기반위에 지어졌기때문이죠. 하지만 인권에 대한 해석으로 싸우죠. 대법원판례도 인권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인권이라는 것의 범위를 정할 뿐이죠. 또한 사람들의 인권이 부딪히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것을 조정합니다. 인간답게 살수 있는 권리인 인권, 그중의 환경권을 보자면 저의 조망을 위해 높은 건물을 지어 옆 건물의 입주자들의 조망을 해칠 수 없습니다.
어라? 정치가 분명 인권위에 지어졌는데 어떻게 정치와 법이 인권의 범위를 정하죠? 인권이 더 큰 개념이고 법보다 고등의 계약인데요? 이는 인권이라는 개념이 아주 자의적이기 때문입니다. 전 인권이 자연상에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사회에서만 존재하죠. 앞서 사용한 비유지만, 사자는 인권을 존중하지 않죠. 그러나 인권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평등권, 사회권, 자유권과 같은 파생된 권리를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사회의 유지를 위해선 인권은 다소 포용력있는 개념으로 남아야하죠. 법이나 정치보다는 크고 고등하지만, 법이나 정치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는 개념. 그래야 사회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는 웅보님의 말은 아주 맞습니다. 정론에 가깝죠. 동의합니다. 다만 제가 말한 인권은 PC주의 같이 정치권에서 일종의 무기처럼 휘두르는 '인권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이 만들어낸 무언가'를 일컫는 거였습니다. 그런 건 정치적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겠죠.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은 그 지역의 무언가가 이유없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슬람이 돼지는 먹지 않는 것은 이슬람의 기후가 돼지를 키우기 적합하지 않았기에 종교적인 금기로 정해 막았다는 설이 아주 유력하듯이요. 그렇기에 외부의 입장에서 그것을 입맛대로 뜯어 고친다면 제국주의와 다를게 없습니다. '사회 진화론'이라는 끔직한 사상인 것이죠. 물론 현실은 제가 쓴 글처럼 극단적이진 않습니다. 로마법에 따르라는 말과,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긍정할 것만 긍정해라 라는 말은 결국 같은 말이거든요.
더 나은 사회와 선택을 위해서.
그것을 위해 그들이 그 지역, 환경에서 정주하며 쌓은 관념, 전통을 부정하지 말라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전통이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죠.
결론은 뭐... 뻔하죠. 중도를 잘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점점 더 즐겁네요. 저만 그런 것은 아니기를.
1. 저도 정말 심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이번 인어공주 캐스팅이 정말 어색하고 싫습니다. 너무 슬퍼요. 그러나 그것을 의견으로 개진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이 싫다 라는 것은 의사표현입니다. 이것이 의견이 되려면 그것이 왜 나쁜지 잘못되었는지 합당한 근거와 논지를 갖추어야하죠. 더군다나 그 대상이 이미 특정 이데올로기를 표방하고 있다면 그 이데올로기의 메커니즘과 싸워야 합니다. 저는 pc한 사람도, 인종차별주의자도 아니지만, 적어도 인어공주 캐스팅의 옳지 않은 점을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습니다.
2. 인권은 정치를 견인합니다. 여러 이유로 억압 되어있던 인권 요구가 사회 변화에 따라 수면위로 올라오며 사회적 변화를 위해 정치를 조작하지요. 따라서 인권은 정치가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정치가 인권을 위한 도구는 될 수 있지만요.
인권 정치 법 모두 사회적 계약에 해당합니다. 사회적 계약은 각 유형의 성질이나 언어의 구체성 등에 따라 차등이 생기지요. 인권은 법보다 고등한 사회계약입니다. 따라서 인권적 옳고 그름은 정치적 판단 위에 서지요.
인권에 대한 입장은 찬성이나 반대로 나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충분히 옳기 때문에 내가 그 가치를 삶에 받아들여 적용할 것인지, 뒤쳐진 채로 남아있을 것인지의 선택지만 남지요.
3.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구절은 현대 사회에서 다소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각자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존중해줄 필요는 있지만, 이미 전세계적으로 정립된 옳은 가치에 대해서 나 홀로 버티는 것은 고집이고 아집이지요.
직접 개입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사실 이미 그런 논의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개입은 직간접적으로 또한 실시간에 걸쳐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히잡에 갇힌 여성이 지구 반대편 비키니 입은 여성의 sns를 보는 것만으로도 개입이라면 개입이겠지요.
아주 뛰어난 반박입니다. 이 반박에 답변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이 기쁘네요.
먼저 1번의 문제부터 답변해볼까요? 성역화라는 명명은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릴때 배우던 도덕과 가치들이 과연 옳을까요? 도덕이나 가치들은 끊임없는 의문들을 극복하며 버텨야합니다. 그러다 어떤 의문에 스러진다면, 그 가치와 도덕은 '옛날의 것'이 되어버리죠. 하지만 현재는 도덕적인 이야기들을 한다고, 그것에 대해 부정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지탄합니다. 소위 PC라고 부르는 정치적 풍조이죠. "덴마크 동화인 인어공주를 어째서 흑인 배우가 연기하는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전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립니다. 모든 곳에서 그렇진 않지만 현재 사회 곳곳에서 극단주의자 팽배해있다는 것은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성역화라는 명명화는 필요합니다. 이름을 붙여주어야, 좀 더 와닿고 그것을 깨 부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성역화라는 단어는 문제를 인식하게하고, 오히려 소통을 부추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통의 단절이 아니라요. 그렇게 되면 인간은 반발심리로라도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죠.
2번의 경우에는 동의가 약간 어렵습니다. 인권은 결국 정치와 뗴어 놓을 수 없습니다. 흑인의 인권을 위해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난 것도, 보편적 인권을 위해 프랑스에서 다소 폭력적인 혁명이 일어나 의회가 생긴 것도 인권이 정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나아가 경제와도 연관이 있고요. 사회에서 정치가 가지는 힘은 강력합니다. 정치에서 받아지는 이념은 '제도'라는 방식으로 사회에 통용되죠. 성소수자를 정치권에서 받아들인다면, 제도적으로 성소수자들의 결혼이 인정될 것이고, 그들또한 보편적인 부부와 마찬가지로 제도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겠죠. 그렇기에 인권은 정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띕니다. 애초에 인권이라는 것 자체가 정치와 법에 기반한 가치이기 떄문입니다. 자연어디에도 인권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오직 정치와 법위에 존재하는 가치입니다. 절대 필연적이지 않습니다. '넌 인간이니까 안 잡아먹을게' 라고 말하는 배고픈 사자는 없는 법이죠.
토론의 원문에서는 카타르에 무지개가 금지되었다는 말이 없어서 잘 몰랐네요.. 카타르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월드컵이고, 카타르의 입장에선 우린 '외부인' 입니다. 외부인들이 자신들의 체제를 망가뜨리기 원하지 않았겠죠. 이 부분은 당연히 비판의 여지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새로운 가치들이 등장하고 바뀌겠지요. 아랍에서 히잡반대 운동이 일어나는 것 처럼요. 그것에 저희가 낄자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그들 주도로 바뀌어야 혁명이지, 저희가 끼어들면 그것은 문화적 간섭이니까요. 일본 극우의 주장을 보십쇼. 그들은 일제강점기로 인해 한국이 발전한 것이라 주장하지 않나요? 완전히 같은 예는 아니지만, 그런 류의 간섭은 옳지 않다는 겁니다. 물론 비판하는 것은 좋다고 봅니다. 저도 공감할 수 없는 가치이니까요.
토론의 원문에서처럼, 축구팀이 무지개 완장을 차는 것에 대해서만 토론한 글 입니다. 원문이 그 내용을 다뤘으니까요.
합당한 수준의 소통이야 당연히 필요하죠. 그것이 전 불가능하기에 성역화라 말한 것 입니다. 최근에야 사람들이 지쳐서 덜하다지만, 몇년 전만해도 사회는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두 극단에서 싸웠습니다. 연예인들이 무슨 말을 하면 미친 듯이 물어뜯죠. 그들에게는 엄청난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합니다. 그들이 공인이라는 이유였죠. 그래서 누군가는 자살을 헀습니다. 이토록 극단적인 사회에서 그 주제를 꺼낼 수도, 토론이 가능할 수도 없었습니다. 토론이라는 것 자체가 아무리 정중해도 하다보면 흥분되고, 기분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전 모든 의견이 성역화라 하지 않았습니다. 대다수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합리적이라면 비판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면 당연히 성역화가 아니죠. 의견을 마구 짓밟을 수 있으니까요. 다만, 어떤 의견을 너무나도 높이 걸어놓고, '저걸 끌어내서 짓밟으면 안돼' 라고 하는 것이 성역화입니다. 아마 성역화라는 워딩에 약간의 오해가 있었나보네요.
좋은 질문 및 의견제시 감사합니다. 덕분에 카타르에 무지개 자체가 출입이 안되는 것을 알게되었네요. 축구만 보다가 관심이 없어 알지 못했을 수도 있는 지식이었습니다.
저도 즐거웠습니다. 제 부족한 머리로는 세상을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그 결과 나온 표현이 '중도'인 것 같습니다. 세상은 하나만 맞을 수 없다보니까요. 언젠가 더 나이를 먹고, 더 지혜로워진다면 주관이 더 강해질 수도 있겠죠.
현대 이슬람의 탄압은 개인적으로도 안타까운 사례중 하나입니다. 개혁정권이 물러나고 과거로 회귀해버렸죠 그러나 변화란 것이 그렇게 단순히 억누른다고 막아지는게 아니라 배웠기에. 언젠가 달라진 이슬람 문화권을 볼 수 있겠죠. 결국은 시간이네요. 더 지혜로워질 저도, 나아질 이슬람 문화권의 모습도.
토론 즐거웠습니다. 놓칠 수 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즐거운 대화가 마지막에 아주 안타까운 결말에 다다랐군요.
저는 중도 무용론자 입니다. 뭐 그렇다고 진보주의자도 아니진요. ㅎㅎㅎ
농담입니다. 아주 즐거웠습니다.
ps. 현대 이슬람 문명권의 여성탄압의 역사는 30년 내외로 생각보다 짧습니다. 친미정권이 물러나고 전통주의 극우세력이 집권하면서 형성한 문화지요. 결국 역사와 전통의 연속성이란 꽤나 부질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곤 합니다.
그 이외에 관광객의 옷차림을 규제한다거나 하는 등의 문제는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글에서 말한 것은 '필드 위' 에서의 이야기 입니다. '옷을 길게 입을 것' 과 같은 규제는 결국 다른 가치의 성역화이겠죠. 이 부분은 종교적인 이야기로 저희가 그 종교를 오래 믿어온 사람들이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울 것 입니다. 결국엔 바뀌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