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은 보수가 소수야당일 때만 빛나는 이유
이번에 이준석이 자신의 몰락에 쐐기를 박는 선택을 하게 만든 1차적인 원인은 한동훈의 선전이다. 한동훈이 여당을 잘 통솔하고 언론의 마사지를 받으면서 이준석의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 이준석이 탈당하기 전에 개혁신당 지지율이 20%까지도 나오더니 이제 비례대표 봉쇄조항 3% 선을 위협받는 수준까지 떨어지자 결국 류호정, 금태섭, 이낙연과 야합을 했다. 그 안철수도 결국 쪼그라들고 쪼그라들어서 국힘의 평범한 중진 1인으로 전락한 것처럼, 이준석의 미래는 안철수의 하위호환이라는 게 정론이다.
이준석의 몰락을 분석하기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이준석의 활약사를 먼저 살펴볼 가치가 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이변을 일으킨 트럼프 열풍은 이준석에게 특별한 의미로 와닿았을 것이다. 먼저, 이준석은 미국 하버드에서 유학을 하면서 미국의 리버럴(PC)과 미국식 토론 문화 등의 문물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왔기 때문에 PC와 특성과 명암을 웬만한 한국 정치인들보다 잘 이해했을 것이다. 그런 이준석에게 미국발 anti-PC는 곧 한국에도 찾아올 '정해진 미래'였으리라.
2018년에 이수역 사건 등 온갖 페미 광풍이 몰아칠 때 이준석이 제일 먼저 페미니즘에 반하는 목소리를 낸 것도, 그 특유의 과단성도 과단성이지만 나름대로 보수의 새로운 먹거리가 안티PC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준석은 2020년 총선 참패 직후에도 페이스북에 멸공, 부정선거 타령 말고 안티PC처럼 새시대에 맞는 메시지를 내자는 글을 쓴 바 있다. 이준석의 분전 덕에 박근혜 탄핵의 불명예를 뒤집어쓴 보수당에서 하태경, 이준석만큼은 젊은 사람들에게 남다르게 보였다.
나는 90년대생 남자로서 지금도 이준석, 하태경을 은인으로 여긴다.
박원순 자살 후 이준석은 나경원, 오세훈 중에서 당내 입지가 약한 오세훈에 역베팅을 하여 성공했다. 그리고 오세훈과 안철수가 단일화 경쟁을 할 때 국힘 중진들은 안철수의 편을 든 와중에 이준석은 오세훈을 계속 밀고나가서 결국 오세훈 단일화에 기여했다.
21년 4월 오세훈은 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