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빈곤자

백세준
백세준 · 사회복지 연구활동가
2023/05/02
"아빠, 갔다 올게. 안녕!"

인천에서 서울로 출근해야 하는 나는 아침 7시도 되기 전에 부랴부랴 집을 나선다. 아직 혼자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들이 엉금엉금 기어서 현관 앞으로 마중 나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쓰리다. 좀 더 나은 생활을 찾아 보고자 서울에 있는 직장으로 이직했더니 출퇴근하는 데 많은 시간을 버리고 있다. 그만큼 14개월 된 아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시간이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에 육아정책연구소는 '평등한 돌봄권 보장을 위한 자녀 돌봄 정책 개선방안 연구' 보고소를 발간했다.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가 있는 취업자 부모 1637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일주일간 평균 노동일수는 4.7일로 나타났으며, 노동시간은 38.3시간이다. 다행히 대부분 주 5일 근무제와 40시간 근무 범위를 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보고서에서 제일 공감이 갔던 부분은 자녀와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하루 평균 단 1.3시간뿐이었다.

시간 빈곤자의 하루

시간 빈곤(Time Poverty)은 여러 가지 기준으로 정의할 수 있으나 통상 '여가(자유)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즉 실제로 노동하는 시간과 준비하는 시간(출퇴근 준비, 소요 시간 등)을 빼고 나면 실제 하루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지원(2015)의 연구나 신영민(2021)의 연구를 보더라도 시간 빈곤을 경험하고 있는 비율이 20% 이상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녀를 키우는 가정의 경우 주 69시간처럼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자녀 돌봄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의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시간을 늘려야 되는데, 그럼 또다시 시간 빈곤 늪에 빠지게 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내 생활을 돌아봐도 아들을 평일 기준 하루에 1시간도 채 보지 못하고 있다. 아들의 하루 스케줄과 내 스케줄이 맞지 않다보니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퇴근하면 아들 방에 설치한 홈카메라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자는 모습만 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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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학 박사과정. 이전에 축구를 하다 그만두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복지정책을 공부하고 연구합니다. 논문, 연구보고서 등을 작성하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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