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장기수 기억의 서사화 - ‘수기’를 중심으로
2024/02/01
비전향장기수 기억의 서사화 - ‘수기’를 중심으로
언론매체가 보도하는 뉴스를 중심으로 비전향장기수를 둘러싼 일정한 문맥이 형성되고 고정되었다면, ‘비전향장기수 이야기’는 ‘수기(手記)’ 형식을 통해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수기에 이르러 비전향장기수의, 그리고 비전향장기수에 관한 기억의 서사화가 본격화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93년 <노동신문>에 게재된 조원재(기자)의 글에서 발견되는 서사 구조와 전략들이 2000년도부터 씌어지기 시작한 비전향장기수의 수기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된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이들 텍스트는 비전향장기수 이야기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었는지, 더불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비전향장기수 일반의 이야기로 통용될 수 있었는지를 말해준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혁명적지조를 굳건히 지켜 42년 남조선감옥에서 굴함없이 싸운 비전향장기수인 《조국통일상》 수상자 리종환동지」라는 제목의 기사는 1993년 12월 9일자 <노동신문>에 게재된 것으로, 이 글의 필자인 조원재는 해당지면 전체를 할애해 남한에 있는 비전향장기수 이종환의 삶을 소개한다. “그에 대한 자료는 아직까지 극히 단편적으로밖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있다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비전향장기수가 대거 송환되는 2000년 9월까지 이들에 관한 정보 및 자료는 불충분한 상태였다. 때문에 글쓴이는 ‘남조선잡지 《길》’에 언급되어 있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이종환이라는 특정 인물의 삶을 재구성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과정에서 정보의 취사선택은 물론 세부의 결락 부분을 보완하는 작업 역시 이루어진다.
2000년 이전까지 조원재를 비롯한 여타의 필진은 ‘비전향장기수 이야기’를 쓰는 과정에서-실제 인물을 대상으로 삼아 그의 생애를 재구성한-일종의 전기(傳記)문학을 집필하는 작가의 역할을 자임하는 한편 이야기에 사실성을 부여하고자 노력한다. 필자들은 기본적으로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