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 가장 비현실적인, 가장 현실적인

김모든
김모든 인증된 계정 · 모든 연결에 관심이 많습니다
2023/08/14

(주의 : 이 리뷰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비현실적 상황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왜 그게 없었을까?’ 라는 생각에 빠졌다. 왜 다른 재난 영화에서 필수인 경찰, 군대, 뉴스(혹은 라디오뉴스), 구조대가 이 영화에선 없을까? 정치인인 의원은 한 명 나오지만 바로 얼어 죽고, 공무원(박서준이 공무원 역할)은 회상신에서 한 번 공무활동을 할 뿐 영화 내내 공무활동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더 이상 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왜냐면 초유의 재난 상황이니까.

하지만 이 영화 속 재난 정체는 불명확하다. 눈 앞에 모든 게 다 파괴되었다. 만약 지진이라면 거의 규모 9.9 인류 역사상 없었던 최악의 지진 같다. 재난 매뉴얼을 보는 주민 대사 중에 조그맣게 ‘지진’이란 말이 나오긴 하지만 주인공들이 직접 지진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일부러 이야기 하지 않는 느낌이다. 

이 영화에서 이 재난이 지진인지 아닌지 얼버무리는 이유가 있다. 잠깐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진지하게 말하자면, 지진은 서로 다른 지각판이 만나는 곳이나 단층 내 힘의 차이로 발생한다. 이 영화 속 재난 모습은 지진과 유사하지만 지진으로 지구 모든 지역이 파괴되었을 리 없잖은가. 지구 모든 지역이 판 사이에 있거나 불안정한 상황일 리 없으니까. 지구 현재 나이는 46억 년이고 수명은 17억 년 남았다. 아직 전 지구에 변화가 일어날 시점은 아니다. 그러니 지진이라면 일부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아무리 무정부 상태라도 라디오 뉴스는 들을 수 있을 것이며, 며칠 혹은 몇 달 뒤라도 세계 어디에서 구조대는 도착할 것이다. 따라서 감독은 가장 비현실적인 상황을 일부러 유도한 걸로 보인다. 어떤 비현실적인 가정으로 관객이 상황에 몰입하도록. 대개 상황을 압축할수록 잘못하면 비현실적으로 보일 위험이 있지만, 대신에 잘 만든 작품이라면 몰입하기 더 쉬워진다. 

엄태화 감독은 씨네 21과 인터뷰에서 지진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은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한다. 
‘지진이 왜 일어났는지 등의 세계관을 다루고 싶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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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김재아란 필명으로 SF장편 <꿈을 꾸듯 춤을 추듯>을 썼다. 과학과 예술, 철학과 과학 등 서로 다른 분야를 잇는 걸 즐기는 편이다. 2023년 <이진경 장병탁 선을 넘는 인공지능>을 냈다. ESC(변화를꿈꾸는과학기술인네트워크) 과학문화위원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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