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찬·반대론자는 약자에 대한 합의도 못하나?
2023/09/25
“낙태(임신중지)가 금지된 필리핀에서는 한국인 남자들이 필리핀 여자를 취하고 도망쳐도 코피노(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다 낳는다”, “너무 가난하거나 강간을 당해 임신을 원치 않을 경우에도 우리 모두가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톨러런스(tolerance·관용)가 있으면 여자가 어떻게든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발언도 불편한가?’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러니까, 낙태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은, 낙태 반대론자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사람일지라도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아이를 키울 수 있게 해야 한다”라는 말조차도 아니꼽게 보냐는 말이다. 기사를 쓴 기자의 머릿속은 모르겠다. 그러나 낙태와 관련된 드라이한 비극적 사실로 기사의 틀을 잡고 여기에 김행의 발언이 튀어 보이도록 배치했으니, 이 발언을 비판하기 위한 기사라고 봐도 될 것이다.
김행 발언의 불쾌한 맥락은 이런 인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띄엄띄엄 읽으면 저 발언은 “여성이 강간을 당했어도 아이를 낳으라”는 말처럼 들린다. 낙태죄에 중형이 선고되는 필리핀의 제도로 인해 여성들이 불가피하게 낙태를 못 하게 되며 생긴 것일 텐데, 그 맥락은 제한적으로 말하고 거칠게 선의만 강조했으니 문제가 될 수 있다. 김행 씨가 가짜뉴스라고 반박하는 지점은 이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사 자체는 가짜뉴스가 아니다. (가짜뉴스는 기사가 의도한 특정 흐름과 대중의 편견 어딘가에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조립돼 댓글로 나타날 뿐)
체계적인 의도가 깔려있을 것이란 생각(음모론적)으로 김행 씨의 발언을 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필리핀이란 (후진국) 사람들도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사람에게 선의를 보인다. 우리 사회에도 선의를 보이면 여성들이 낙태를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겠냐!” 조금 더 나가 보자. ‘낙태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는 은근히 ‘낙태를 터부시하는 인식’을 자극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