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고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 20세기 한국사회와 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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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문화비평
2023/07/15
한국 전쟁 시기에 발생한 고아들(아이굿뉴스)

"그 많던 고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 20세기 한국사회와 고아

고아들은 우리 사회에 항상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이는 매우 안타까운 사실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회와 정부에 중요한 문제이다. 물론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과거에 이 문제는 한국에서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가?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연구는 한국 전쟁 후의 입양에 대한 것이고 전쟁 전 시기의 고아원에 대한 연구는 부족한 편이다. 이 틈을 채우기 위해, 지금까지 내 연구는 한국 최초의 고아원에 대해 집중해 왔는데, 주로 누가, 언제, 그리고 왜 고아원을 세웠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 최초의 고아원은 조선 후기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많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온 후에 고아원을 세웠는데 1885년에 블랑 주교가 (Bishop Marie-Jean-Gustave Blanc) 한국 최초의 고아원을 설립했고 일년 후에 호러스 G. 언더우드 (Horace G. Underwood) 선교사도 고아원을 세웠다 (Rausch 2008: 67-68). 언더우드의 경우에는, 고아원을 세운 두 가지 설립 이유가 있었는데, 서울에 있는 고아들을 돕는 것 외에 교육과 기독교 전파가 중요한 목적이었던 것 같다. 고아원을 통해 교육도 할 수 있고 또, 고아들이 기독교에 대해 배울 수 있기를 희망했다 (Underwood, Yi, Oak 2005: 371, 377).

다른 선교사들도 고아원을 세웠지만 나중에는 한국인들도 고아원을 설립했다. 예를 들면, 1910년까지 조선 시대 궁중에서 근무한 이한율이 고향인 공주로 돌아와서 1913년 재산을 기부하고 고아원을 세웠다 (Pung Duck Won 2018). 또한, 1918년  기독교인이었던 김병찬은 어느날 큰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매우 아파 고아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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