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중일기] 맥주

최지수
최지수 인증된 계정 · 전세지옥, 선상일기 저자입니다.
2024/01/19
 승선 46일 차, 짧은 기간 동안 무언가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게 있다. 몸무게를 10일에 1킬로씩 꾸준히 4.5kg를 증량해 냈다. 배가 복서에게 리버샷(간장 펀치)을 맞아도 한 대 정도는 흡하고 버텨낼 수 있을 것만큼 포동포동해져 있다. 그동안 혼자만 살이 쪘다는 비밀을 두꺼운 옷 속에 숨겨놓고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식당의 옆 테이블에 앉은 선배가 내가 어느샌가 갑자기 동그래져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이야기했다. 그냥 동그래진 것을 느낀 게 아니고 동그래져서 ‘깜짝’ 놀랐다니...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내게 큰 관심을 쏟지 않는 사람이 살쪘다고 하는 건 심각한 경보다. 이 모든 건 야심한 밤마다 조금씩 홀짝이는 맥주와 함께 즐기는 맥주 친구들 때문이다.     

 배에서는 술에 관한 엄격한 룰이 있다.     

 그리 가깝지 않은, 하지만 10년도 채 되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다. 다른 해운회사에서 선장과 1 항사가 술을 마시다 감정이 격해졌다. 선장이 병을 깨고 깨진 병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1 항사의 부드러운 목을 찌른 적이 있다고 한다. 제삼자가 그들을 발견했을 때 1 항사는 이미 사망하였고, 선장은 술에 취한 채 1 항사의 옆에 누워 자고 있었다고 한다. 병이 아닌 흉기로 인정이 되었고 선장 아니 살인자는 감옥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 후로 해당 회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해운회사에서 알코올도수가 10퍼센트를 넘어가는 술이 반입 금지되었다고 한다. 

 맥주도 무제한으로 반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인당 하루에 1.5캔만 먹을 수 있게 반입을 제한하였다. 카타르를 왕복하는 이번 항차의 경우에는 36일 정도 소요되어 2박스를 실을 수 있었고, 저번 호주 항차는 25일 정도 소요되는 1박스만 실을 수 있었다.    

 신나는 일은 배 위의 술은 면세가 적용되어 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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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를 당했고 그 피눈물 나는 820일의 기록을 책으로 적었습니다. 그 책의 목소리가 붕괴돼버린 전셋법 개정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길 바랍니다. 그 후, 꿈을 이루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배를 탔고 선상에서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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