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이종철
이종철 · 전문 에끄리뱅
2024/03/26
2022년에 방영되었던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의 신부>를 보는데 ‘인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흥미로운 대사가 나온다. 직업 근성이 발동해서 그 대사를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여주인공인 서혜승이 겸임교수로서 ‘최고경영자를 위한 리더쉽‘ 에서 사용한 대사이다. 그녀는 ’신화 속에 드러난 리더쉽‘이란 강의를 맡고 있다.직접 그 대사를 인용해보자. 

”인문학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배를 저어가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 잠시 쉬어가는 것이지만, 저 하늘의 북극성을 보고 그 방향을 정하는 것과 같지요.“ 

그냥 생각없이 지나쳐 버릴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이 드라마의 연출가가 생각하는 인문학관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말하자면 여기서 언급된 인문학관은 배를 젖는 노동과는 무관한 것, 잠시 쉴 때 하늘을 바라 보는 것처럼 일종의 여가의 학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인문학은 먹고 사는 문제와는 상관없이 한가로울 때나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잠시 과외로 생각해볼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은 직접적인 삶의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애를 쓰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스의 밀레토스라는 해안 지방에서 철학이 시작할 때 이곳은 다른 어느 곳보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이들에게는 삶의 여유와 여가가 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치열한 갈등이 없이 여유롭게 우주 자연의 근본 원리(arche)에 대해 탐구할 수 있었다. 이들이 찾은 아르케는 존재의 기원일 수도 있고, 그것을 지배하는 원리일 수도 있고, 구성하는 물질이 될 수 있는 등 여러가지 의미를 띠고 있다. 어떤 이는 그것을 물이라고 하고, 다른 이들은 공기니 누스(nous)니 등등으로 주장을 했다. 이런 궁극적 원리에 대한 탐구는 세간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알고 싶다는 호기심(thamazein)에 기초해 있다. 물론 <블랙의 신부>의 김정민 연출가는 이러한 인문학의 부수적 효과도 지적하고 있다. 하늘의 북극성이 항해를 하는 선원들에게 방향을 가르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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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비판》와 《일상이 철학이다》의 저자. J. 이폴리뜨의 《헤겔의 정신현상학》1(공역)2, G. 루카치의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 전4권을 공역했고, 그밖에 다수의 번역서와 공저 들이 있습니다. 현재는 자유롭게 '에세이철학' 관련 글들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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