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품고 나아가는 시간의 밀도는 좀 다르다

알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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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3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발상과 표현력에 충격을 받을 때가 있다. 어떤 작가는 배울 준비가 있는 상태를 일러 ‘학익진’이란 표현을 썼다. 문제를 맞이해 승기를 잡고 전투를 벌일 준비가 되어 있는 마음의 형상을 말한 것이다. 이 표현이 절묘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 마음의 상태에 따라 뇌가 다르게 작동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기 때문이다. 마음이 열려있을 때는 정보를 쉽게 기억할 뿐만 아니라, 생소하고 어려운 내용도 흥미롭게, 때론 자극적일 정도로 재미있게 배우기도 한다. 반면, 유독 마음이 내키지 않아 봐도 봐도 이해가 어렵고 기억도 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거북선을 탄 이순신 장군이 항상 대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왜 어떤 시간은 다르게 흐를까? 마음의 ‘학익진’이라는 것은 어떻게 취할 수 있는 것일까? 새롭게 배워야 하는 대상에 대해 마음을 열고 호기심을 가진다는 일은, 어떤 과정을 수반하는 것일까? 

나는 ‘질문’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대학원에서 훈련받은 탓에 ‘질문’과 ‘문제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보통 말하는, ‘질문을 가져라!’라고 할 때의 질문(question)은, 조금 다른 밀도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필요한 질문(puzzle)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전자는 보통 한 문장의 질문문을 말한다. 더 나은 질문을 한다는 것은, 문장을 다듬는 일과도 같다. ‘무엇이 중요한가’를 묻지 말고 ‘그건 왜 중요한가’라고 물으라는 것이다. 물론 또렷한 질문을 가지고, 이를 뒤집고 뒤섞고 가지고 놀면서 마음의 호수에 질문의 낚시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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