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유라시아에서 어느 정도의 존재감을 갖고 있을까

미중갈등에서 누가 이길 거 같아? 라고 하면 십중팔구 “당연히 미국이지!”를 외칠 것입니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미국의 모든 지표는 너무나 압도적입니다. 경제, 과학기술, 문화, 이미 쌓아놓은 지구적 영향력, 그리고 무엇보다 글로벌 인재를 빨아들이는 차원에서 미국은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강력할 수가 없는 국가입니다. 게다가 북아메리카라는 위치 덕택에 대서양과 태평양이라는 공간에 모두 진출할 수 있고, 주변에 적대적 강대국도 없으니 안보 위협도 없죠. 중국은 반면 취약한 점 투성이 같아보입니다. 아무리 성장했다 하더라도요. 경제도 부족하고, 과학기술도 밀리고, 문화적으로는 봐주기가 힘들죠. 게다가 인구도 점점 고령화되고 있고, 주위 국가들과 다툼도 많습니다. 중국 엘리트들조차 자식들은 미국 유학을 보낼 정도면 말 다 했죠.
   
하지만 이런 구조적 취약점은, 큰 틀에서는 중요하지만, 당장 눈 앞에 다가온 중국이란 불길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트럼프의 디커플링 노력으로도 쉽사리 끊어내지 못한 중국 시장과 제조업 생산기지로서의 매력 때문에, 중국의 위상은 주변국에서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한한령을 통해서 그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새삼스럽게 체감해본 나라고요. 호주 정도 되는 국토 크기와 자원 부존량을 가져도 그게 가능할지 안 할지는 꽤나 의심스러운 상황인 게 안타깝게도 중국을 대하는 주변국의 현실입니다. 이런 글이 중국을 추켜세우고 중국 ‘편’을 드는 쪽으로 해석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저 세계 속의 중국을 더 다양한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향후 세계 권력의 향방이 결정될, 지구 인구의 다수가 거주하고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있으며 빠르게 발전하는 대륙, 아시아에서 중국의 위상에 대해서 간단하게 리뷰를 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아시아 각국에서 중국이 쓸 수 있는 도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생산기지로서의 역량, 값싼 제조업 상품의 공급처
내수경제의 팽창에 따라 형성된 막대한 소비시장
정부 지시에 따라 전략적으로 투자되는 투자금
인접 라이벌 국가에 대한 공동 견제
(권위주의 국가의 경우) 체제에 대한 불간섭과 암묵적 안전 보장
   
물론 여기에 첩보와 매수 같은 음지의 영향력 행사 수단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양지의, 명시적 영향력 행사 수단만 따지면 이렇습니다. 중국은 크게 이런 다섯 가지 도구들을 바탕으로 지구 전역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데, 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더욱 진하게 나타납니다. 정말 간략하게 여러 국가들의 상황을 요약해보고자 하니, 첨부한 지도를 보면서 한 번 살펴봐주시길 바랍니다.
   
   
   
1. 필리핀: 미국 식민지이기도 했고, 대표적인 친미 국가였지만 포퓰리즘 권위주의 성향의 두테르테 당선 이후, 중국의 영향력이 상딩히 확대되었습니다. 종잡을 수 없는 두테르테의 행보 때문에 불명확하지만 중국이 두테르테를 통해 필리핀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그러나 남중국해 문제를 비롯한 각종 이슈가 걸려 있어서 쉽지는 않습니다.
2. 태국: 2014년 쁘라윳 짠오짜의 군부 쿠데타 이후 친중 행보 가속화되었습니다. 트럼프가 중국에 맞서며 베트남과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태국 엘리트들의 주적인 포퓰리스트 탁신 친나왓과 친하게 지낼 기미를 보이자 급속도로 중국과 가까워졌습니다. 
3. 미얀마: 민정 이양 이후 중국과 거리두기가 진행되었으나, 2017년 로힝야 학살이 서방의 비난을 사게 되며 중국에 다시 밀착했습니다. 미얀마군의 쿠데타 배경에는 이같이 아웅산 수치 정부를 중국마저도 인정하게 되면 군부의 영향력이 사라질 것이라는 부담감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중국은 누가 되었든 자기들하고 친하게 지낼 수만 있다면 괜찮다는 분위기입니다. 미얀마는 운남성과 맞닿아 있고, 말라카 해협에 구애받지 않고 석유, 가스, 항만 등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출구로 높은 전략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4. 말레이시아: 2009년 당선된 나집 라작 총리가 차이나머니에 포섭되었고 일대일로 관련 스캔들로 2018년 낙마했습니다. 이후 정권을 교체한 마하티르(!) 총리 주도 하에 상당히 많은 사업들이 폐지되었는데, 향후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지는 미지수입니다. 어쨌든 중국은 운남에서 출발하여 싱가포르까지 육로로 연결하겠다는 계획을 갖고는 있습니다.
5. 라오스: 경제적으로 너무 열악한 상황에서, 인접한 운남성의 경제적 자장에 완전히 끌려들어갔습니다. 올 연말 완공될 곤명-비엔티안 철도로 인해서 아마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6. 캄보디아: 권위주의 지도자인 훈센 총리는 대표적인 친중 인사입니다. 라오스와 비슷한 상황으로, 중국은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아우르는 대 메콩 지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고자 하는 야심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7. 싱가포르: 안보적으로는 미국과 밀접합니다만, 사상적으로는 중국의 막대한 우군입니다. 등소평은 싱가포르를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많이 말해왔고, 지금도 중국 지도자들은 리콴유를 존경합니다. 민주주의보다 우월한 기술 관료 독재에 대해서 싱가포르와 중국은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8. 방글라데시: 총리인 셰이크 하시나는 경제 발전을 지상과제로 올려놓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지도자입니다. 중국과의 경제적 교류를 최대한 확대하되, 인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자 조심하고 있습니다.
9. 파키스탄: 중국의 가장 중요한 핵심 협력국입니다. 파키스탄과 중국은 인도를 같이 견제하고자 친해졌고, 중국은 중동의 석유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도록 파키스탄의 항만을 활용하고자 합니다. 위구르에서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프로젝트, 중국-파키스탄 경제 회랑(CPEC) 프로젝트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너무 규모가 커서 추진 가능할까 늘 의구심을 만들고 있었는데 최근에 몇 가지 중요한 진전이 있기는 했습니다.
10. 스리랑카: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새로운 항구인 함반토타를 중국 주도 하에 건설했고, 중국 지분 하에 운영 중입니다.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11. 네팔: 전통적으로 인도의 우호국이지만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상당히 커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12.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신장 위구르 지역을 경계로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들입니다. 중국은 신장 지역을 중앙아시아, 인도양, 시베리아로 나가는 출구로 삼고자 합니다. 호르고스와 카슈가르는 핵심 무역 도시로 성장 중이며, 이 세 나라들을 상대로 원자재를 구매하고 소비재를 파는 식의 무역이 활발합니다. 몇 가지 인프라 사업도 전개되고 있는데, 역시 일대일로가 지나가는 나라답게 관련한 스캔들과 부채 문제가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중국의 커지는 존재감을 미국, 러시아, 이란, 터키 등과의 등거리 외교를 통해 아주 섬세하게 조율하려고 하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13. 투르크메니스탄: 세계 4위의 천연가스 생산국인데, 원래 판로를 러시아에만 의존하느라 불만이 많았던 차, 중국으로 판로를 뚫을 수 있게 되어 중국의 영향력이 강해졌습니다. 다만 지리적 거리와 투르크메니스탄의 정치적 중립 지향 때문에 정치적 영향력은 크지는 않습니다.
14. 러시아: 원래 극동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나라였습니다만, 2014년 우크라이나 위기와 서방의 경제 제재 때문에 중국과 정치, 경제 등 협력을 아주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파이프라인이 완공되면서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소화해주는 큰 손이 되었습니다.
15. 이란: 트럼프가 오바마의 대 이란 유화책을 발로 차면서 중국이 그 빈자리를 아주 빠르게 채웠습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반서방 협력체의 핵심 일원으로 가담하고 있는 모양새고, 카자흐스탄과 카스피해를 허브로 지리적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16. 벨라루스, 헝가리, 세르비아: 유럽의 대표적인 ‘반서방’ 국가들로,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정치적 정당성과 경제적 지원을 확보하고자 하는 대표적인 국가들입니다. 그리스도 애매하지만 여기에 끼어있고 중국에 항만을 제공합니다.
   
   
전부를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간단히 살펴만 보아도 이렇습니다. 물론 중국이 저 나라들 모두에서 압도적 영향력을 확보한 것은 아닙니다. 나라 별로 정도의 차이가 당연히 있고, 유사시 말레이시아처럼 어떻게 뒤집힐지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인도처럼 명백히 중국의 경쟁자를 선포하거나, 베트남처럼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절대 늦출 생각이 없거나, 인도네시아처럼 중국과 거리도 있고 어느 정도 자체적인 잠재력도 있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미국은 이런 나라들, 그리고 위에 언급된 나라 중에서도 대중국 관계가 흔들릴 나라들을 공략하려고 하겠지요. 아마 파키스탄,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정도가 지금은 확실하게 중국 영향권 아래에 들어온 나라가 아닐까 한데요. 아, 그러고보니 중국의 영향력을 둘러싸고 줄다리기를 하는 나라로 북한도 있군요.
   
트럼프 행정부 시기의 문제는 사실 이렇게 유라시아 국가들의 운명에 관심 없다고 선언하면서 유라시아 국가들이 중국으로 연쇄적으로 밀착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는 듯 합니다. 중국을 때리겠다고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중국에게 상당히 이로운 판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입니다. 바이든이 그나마 동맹의 회복이나, B3W 같이 일대일로에 카운터를 먹일 수 있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서 다행이긴 합니다만.
   
한국으로서 이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유는 많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에만 의존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저 수많은 나라들과의 교역, 투자, 인적 자원의 이동이 우리의 번영에 상당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갈수록 더 첨에 해지면서,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일종의 ‘편가르기’ 상황이 온다면, 그래서 중국과 가까운 나라와의 관계도 연쇄적으로 껄끄러워진다면? 어떤 식으로 그런 난감한 상황들을 해쳐나갈 수 있을지, 유라시아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사고가 더더욱 필요해보입니다. 그리고, 일대일로를 전망한 지도에서 잘 드러나듯, 중국은 이미 그런 식으로 유라시아를 하나의 통일체로서 사고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