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 여성 홈리스 이야기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11/11

노숙자, 실업자, 가장. 이 세 단어들은 자연스럽게 ‘중년 남성’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초라한 행색으로 인도 한 귀퉁이에 앉아 동냥하는 걸인, 지하차도에 신문지를 깔고 누워 잠을 청하는 부랑자, 회사 구조조정으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가장까지. 이들은 대개 IMF 외환위기와 맞물려 실직하거나 운영하던 사업체가 망해 거리로 내몰린 남성들로 재현된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며, 때로는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에 삶이 있다. 남성 홈리스가 빈곤의 원형으로 그려진 탓에 뒤로 밀려났을 뿐, 여성 홈리스들은 도시 어딘가에서 계속 살고 있었다. ‘홈리스 행동 생애사 기록팀’은 줄곧 음지에 머물러 있던 여성 홈리스 개개의 서사에 주목한다. 2021년부터 2년여 가까이 ‘비적정 주거’에 사는 여성 홈리스 일곱 명의 이야기를 채록했고, 이를 취합하여 인터뷰, 구술사, 에세이 형식으로 엮어냈다.

길가에 흐드러진 들꽃처럼 가녀린 삶을 상상했다면 필히 낭패를 볼 것이다. 평범하게 살다가 모든 걸 잃은 남성 서사를 지레짐작했다면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만큼 여성 홈리스들의 삶 속에는 어디로 튈지 몰라 독자들을 당혹시키는 목소리들이 난무한다. 현실과 몽상이 뒤죽박죽 뒤엉켜 있고, 독이 바짝 오른 얼굴로 열변을 토하고, 잔뜩 성난 목소리로 몸소 겪은 부조리를 털어놓는다. 여성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은 거칠고 생경하며, 이야기 곳곳에는 공백이 존재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공백은 여성 홈리스들의 고달픈 삶을 다각적으로 조명하며, 미처 내뱉지 못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끔 한다.

여성들은 모태부터 가난했다. 빈곤, 가정 폭력, 장애, 질병이 한 세트로 따라붙었다. 홈리스 이후의 삶도 고되고 서럽긴 매한가지다. 허기를 채우려고 무료 급식소에 가면 남성들이 대놓고 희롱하고 눈치 준다. 고개 푹 숙이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면 대뜸 옆에서 “하고 싶다”라며 추태를 부린다. 줄 서서 배식 받으면 뒤에 있는 사람이 식판을 빼앗아가는 통에 ‘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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