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에 고시생은 없지만, 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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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5
이 글을 쓰기 전에 나의 인맥을 총동원(16명)하여 간이 리서치를 해봤다. 

“자신의 경험을 제외하고 주변에 고시원 생활을 해본 사람이 있다, 손.”

총 12명의 사람이 있다고 대답했다. 본인이 거주했었던 사람도 있었다.

나의 한 줌 인간관계라는 좁은 표본에서조차 이렇게 많은데 이걸 전체 인구로 늘려보면 얼마나 많아질까. 

그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고시원의 복잡하고 적막한 밤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생각하면 ‘최저 주거기준’이란 게 얼마나 인간의 삶과 밀접한 법인지 깨닫게 된다.

물론 나도 고시원에서 살아본 적이 있다. 나는 총 세 군데의 고시원을 경험했는데, 첫 번째 고시원 생활은 고등학생 때였다.

낡았지만 그렇다고 저렴한 곳은 아니었다. 방에는 침대와 책상과 픽셀 깨지는 화면의 뚱뚱한 TV가 놓여 있었다. 당연히 창문은 없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이었다. 그래서 씻어야 할 때면 목욕바구니에 샤워용품과 갈아입을 옷을 넣고, 제발 아무도 없길 바라며 축축한 욕실로 들어섰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천장이 점점 내려앉는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내 머리 위를 덮어 관 뚜껑이 되는 상상을 했다. 그래서 잘 때는 불을 켜고 자거나 TV를 틀고 잤다. 그러면 좀 살 거 같았다.

사람이 피폐해지는 경험을 그때 처음 했다. 계속 여기에 있다가는 말라죽어버릴 거 같았다. 그래서 다른 고시원으로 갔다. 거기는 창문도 있었고 방 안에 샤워실도 있었다. 대신 10만 원이 더 비쌌다.
확신은 없지만 일단 내 목숨이 월 10만 원보다는 비쌀 거 같았다. 그래서 고민하지 않고 고시원을 옮겼다.

고작 그 두 개였는데 훨씬 삶이 생기 있어졌다. 그때부터 집을 볼 때 창문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우리나라에는 ‘최저 주거기준’이란 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 1인 가구를 보면 최소한의 면적은 14㎡(4.2평)이며 부엌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원룸을 보러 갔을 때 ‘이거 밥을 어디서 먹으라는 거야?’하는 생각이 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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