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의 고고인류학 173편 - 터키의 31일 지방 선거, 에르도안과 현 이스탄불 시장 이마모울루의 정치 생명이 달렸다

알렉세이 정
알렉세이 정 ·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 연구교수
2024/05/22
터키에는 이번 3월 31일 터키 전국의 지방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유세가 한창 진행 중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곳은 터키 최대 도시인 인구 1,600만의 이스탄불이다. 시장 임기는 5년이며 공화인민당의 에크렘 이마모울루(Ekrem Imamoğlu)가 현 시장이다. 5년 전, 2019년에는 이마모울루가 비날리를 꺾고 당선되었지만 여당인 정의개발당과 에르도안이 한 달 동안 재검표, 재개표를 실시하는 선거 만행을 저지른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마모을루가 4월 17일 당선이 확정되었는데 여당인 정의개발당 측이 "부정선거가 있었다"며 선관위에 이의를 제기하고, 에르도안은 "국민이 재선거를 원한다"며 선관위를 압박해 선거 결과를 무효로 돌리고 재선거를 실시하기로 했지만 재선거에도 이의 없이 이마모울루의 당선이 확정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 : 터키 안탈리아 번화가에서 선거 유세 중인 정의개발당, 사진출처 : 필자가 현장에서 직접 촬영

에르도안이 시민의 손으로 당선된 시장을 근거도 없이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여당과 함께 재선거로 뒤집은 것이다. 선관위는 투표함 관리자에 민간인이 포함돼 있어 공무원만 맡아야 한다는 선거법을 어겼다는 이유라는데 아타튀르크 이후, 항상 투표함 관리자에는 민간인이 5~10% 정도 참여할 수 있게끔 아타튀르크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타튀르크가 종교와 민족을 넘어서 만든 헌법을 에르도안이 무시하고 선거법을 근거로 딴지를 건 것인데 에르도안이 2017년 개헌을 통해 판,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판사, 검사위원회(HSK)의 13명 위원 중 10명을 자기 사람으로 앉혔다. 

이 또한 명백한 위헌이다. 아타튀르크 때부터 민주주의를 위하여 서로를 견제할 수 있게 삼권분립을 명확히 명시하고 있다. 야당인 공화인민당 지지자들 뿐 아니라 이스탄불의 시민들이 터키 국기를 들고 선관위의 이스탄불 시장 선거 재선거 결정에 반발하는 시위를 벌였었다. 당시 에르도안이 선거 결과에 반발한 이유는 이스탄불이 에르도안에게 매우 특수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인구 1,200만명에 달하는 이스탄불이 터키의 정치, 경제 중심지이며 에르도안 자신이 1994년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되면서 정치적 입지를 키웠고, 이후 정의개발당은 25년간 시장 자리를 지켜왔기 때문에 그 입지가 흔들려서 벌어졌던 터키 민주주의 사상 최악의 만행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나서 5년 후, 이스탄불에서 집권 여당인 정의개발당은 무라트 쿠룸(Murat Kurum) 전 환경장관을 후보로 내세워 현 시장인 에크렘 이마모울루(Ekrem Imamoğlu)에 도전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2023년 대선을 통해 최소 2028년까지 집권을 연장한 레제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에크렘 이마모울루의 ‘정치적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그 이유는 에르도안이 자신의 정치적 근거지인 이스탄불을 확보해야 터키 최대 도시에서도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이번에도 이스탄불을 잃는다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이 축소된 상태에서 행정적인 정치력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마모울루의 입장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연승을 하게 된다면 차기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 즉, 1,600만 이스탄불 시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2028년 앙카라 대권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되는 것이기에 이마모울루의 입장에서 이번 시장 선거가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두 후보의 지지율이 오차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에 있다. 사실 이마모울루는 2019년 이스탄불 시장으로 어렵게 집권한 이래, 뭐 하나 제대로 보여준게 없다. 2020년에 발생한 코로나 대처도 제대로 못해 이스탄불의 거리를 폐쇄하는 악재를 만났고 코로나 이후, 이스탄불 도시 경제는 더욱 추락했으며 리라화 폭락도 막지 못했다. 인구 1,600만의 대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시 경제 확립인데 도시 경제가 2015년 이전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좋지 않다는 것이 체감상 느껴진다.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봤을 때, 이스탄불의 물가는 엄청난 수준으로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인플레이션 또한 심각하다. 그렇기에 높아진 물가 비례,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이스탄불의 탁심 광장에는 끊임없이 시위도 발생한다. 과연 이스탄불 시민들이 시 경제 추락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이마모울루에 다시 신뢰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제로 정의개발당 시장 때 보다 나아지리라 기대했지만 결국 더 악화되었으면 악화되었지 오히려 정의개발당 집권 시기보다 더 못하게 된 것이다. 

5년 전, 당시 수도 앙카라와 관광도시 안탈리아까지 공화인민당 후보가 승리했다. 이곳들은 이전 25년 동안 모두 정의개발당과  이슬람권 진영에서 모두 승리했던 곳이었다. 그래서 에르도안은 이번 지방선거에 비장의 카드들을 제시하며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최저 임금 인상"안이다. 베다트 이시칸(Vedat Isikhan) 터키 노동부 장관은 2024년 1월 1일부터 월 최저임금을 49% 인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인상된 최저 임금은 17,002 리라(한화 약 745,200원)로 작년 2023년 7월에 인상된 현 최저 임금보다 49%, 2023년 새해 1월 1일보다 100% 인상된 수준이다. 

에르도안은 노동자들이 인플레이션에 짓밟히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터키는 현재 살인적인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지난 2년 동안 최저임금을 연간 두 차례의 인상으로 2배 가까이 인상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여태까지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면서 터키의 물가 상승률은 2023년 10월, 85.51%까지 급등했으며 현재도 60%대를 유지하고 있다. 리라화 가치는 2024년 현재, 35% 하락해 국민의 생활고를 가중시켰다. 이 가운데 정부가 표심을 되돌리기 위해 최저 임금 인상 카드를 내세워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에르도안은 2023년 5월,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는 긴축 통화 정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올해 3월 초, 터키 중앙은행에서 금리 인상을 시작한 지 7개월 만에 7차 금리 인상을 단행해 기준금리를 연 42.5%로 인상했다. 터키의 통화 당국이 이번 달 지방선거를 앞두고 리라화 하락과 물가를 진정시키기 위해 여러 정책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터키의 중앙은행은 통화 긴축 기조를 뒷받침하기 위해 추가 조처를 했다며 상업 대출과 일반 대출의 월별 증가폭 상한을 각각 2.5%와 3.0%에서 모두 2.0%로 낮췄다고 했다. 

이어 이와 같은 조치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담보 설정과 더불어 대출 증가율에 따른 필요 적립금을 설정하는 등 노력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중앙은행은 이와 별도로 시중 은행 등 상업 대출 기관에 개별적으로 연락해 외화 구매 한도를 부과하고 3개월 미만의 단기 선물 계약을 피할 것을 요청했다. 이와 같은 경고는 작년 에르도안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한 뒤 처음 있는 일이긴 하다. 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작년 5월 대선에서 다시 승리한 이후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45.0%까지 끌어올렸는데도 국내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가운데 내려진 조치였다.

에르도안은 지난 3월 8일 이스탄불의 한 체육관에서 열린 청소년재단 행사에 나타나 이번 지방 선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 선거는 터키 전체의 전환점이라면서 자신에게 이번 선거는 결승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그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신호가 아니냐는 분석도 있지만 여태까지 에르도안의 행보를 볼 때 딱히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이번 지방 선거는 이마모을루 현 시장과 에르도안 대통령의 일종의 대리전이나 마찬가지다. 이마모을루는 수십 년 만에 에르도안 대통령의 가장 큰 도전자로 여겨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또한 이번 선거가 변수인 이유다. 

만약 이마모을루 시장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고 에르도안의 집권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정적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작년 터키에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53,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상황 또한 이번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마모울루는 낡고 황폐해진 건물을 철거하고 지진에 강한 대체 건물을 짓는 개발 사업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마모울루의 공화인민당이 다시 약진 할 것인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2019년 야권 연합이 에르도안에 대항하기 위해 뭉쳤던 것과 달리, 지난 해 대선 이후 연합 체제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부분이 치명적인 약점이기 때문이다. 

에르도안은 이번 선거에 사활을 거는 이유 중에 또 다른 부분은 지방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헌법 개헌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터키의 입법부는 지방 의회 대표자 성격이 강하다는 특색이 있다. 지방 각지를 정의개발당이 장악하고 이스탄불을 장악하게 되면 개헌을 요청할 수 있게 되고 여기에서 에르도안의 종신 집권이 가능한지의 여부가 판단된다. 종례 터키 헌법에는 중임 대통령이 임기 중 조기 대선을 실시해 당선될 때는 5년 추가 재임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현재 조기 대선을 치르는 방법을 통해 에르도안 대통령은 2033년까지 임기를 한 번 더 연장할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번 지방 선거에서의 과반은 무조건 필요하다. 특히 이스탄불의 승리는 거의 50%의 확률을 잡은 것이나 다름없다. 에르도안의 나이는 1954년 생으로 올해 70세다. 이번 선거가 에르도안이 80세까지 집권하느냐 마느냐의 사활이 걸려있다. 이게 사실상 종신 집권이나 마찬가지인데 개헌을 하게 되면 에르도안의 종신 안이 화두가 될 것이다. 에르도안이 종신집권을 하느냐, 아니면 현 이스탄불 시장 이마모울루가 2028년 에르도안의 강력한 정적이 되느냐는 여기에 달렸다. 사실상 두 사람의 정치 생명을 건 일종 "러시안롤렛"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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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의 역사학자 고고학자, 인류학자. 역사, 고고, 인류학적으로 다양하게 조사, 연구하기 위해서 역사, 문화적 체험을 중시하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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