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왜 디지털 인문학 연구가 거의 없는 것일까
2023/06/02
얼마전 미국에 가 계신 모 선생님으로부터 아래 연구팀이 발표한 학술행사에 참석했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CEDAR Phase Two: Critical Editions for Digital Analysis 프로젝트팀의 웹사이트를 살펴보면
What can we learn about the structure and history of classic texts when we can study them on a single digital platform?
라는 질문과
This project extends a multi-year digital humanities initiative that is producing critical editions of canonical texts. In the first phase, the research team built a database that includes the Gilgamesh Epic, the Hebrew Bible, and Shakespeare’s plays. In this phase they will add the Egyptian Book of the Dead, the Middle English poem Piers Plowman, the works of Herman Melville, and Indigenous American sign systems. They will also develop new modes of digital analysis and collaboration for scholars across different fields of expertise.
라는 간략한 요약문으로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소...
잘 읽었습니다. 흥미롭지만 썩 공감가는 내용은 아니네요. 깊이가 얕습니다. 디지털 인문학이 인문학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말을 인용하면서도, 이른바 '순수' 인문학과 디지털 인문학을 구분하는 이유는 무엇이죠? 디지털 인문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연구자가 텍스트를 읽고 표현만 디지털 형식으로 하면 디지털 인문학인가요? 그러면 <사자의 서>, 성경 등의 텍스트를 읽고 손으로 글을 쓰는 행위나, 지금 제가 하듯이 컴퓨터로 글을 작성하는 것이나, 프로그래밍 언어로 보기 좋게 텍스트를 편집해 보여주는 행위가 무슨 차이인 것이지요?
제가 도리어 편헙하게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인문학은 읽고 쓰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디지털 인문학이나 순수 인문학이라고 다를 게 없어요. 읽고 요약해서 쓰면 됩니다. 그런데 인문학이 '디지털화'될 수 없는 이유는 요약의 특별함에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이해한 바대로 글을 줄이고 늘이는데, 그 과정을 기계적 인과관계로 모두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마치 이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처럼, 어떤 텍스트를 요약하는 절대공식은 이 세상에 없잖아요. 이 점만 보더라도 인문학의 수량화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 인간 없는 인문학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만약 디지털 인문학이 이러한 고민을 모두 포함한 것이라 하면, 그건 이미 순수 인문학에 대비되는 디지털 인문학이 아니라, 순수 인문학이 디지털이라는 도구로 표현된 것일 뿐이지요.
글에서 순수 인문학의 저항이 크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다소 우스꽝스럽네요. 마치 기계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분노했던 러다이트 운동을 연상시키는 듯합니다. 바로 앞 문단에서 제가 정의한 인문학이 디지털 인문학에 대한 저항으로 보이시나요? 마치 문과와 이과로 대한민국 사람들의 정신을 일도양단하듯이, 순수 인문학과 디지털 인문학의 이분법을 사용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습니다. 한국에만 디지털 인문학 연구가 없는 것인가요? 인문학의 수량화를 거부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어디에서든 디지털 인문학을 회의적으로 바라볼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