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라와 전투 와 조선인들
2023/11/22
1941년 6월25일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통령 행정명령 8802호’에 서명한다. “정부 기관과 연방 사업자들은 국가 방위사업에서 인종, 종교, 국적에 따른 고용 차별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일단 공식적 문호가 열리고 그 해 12월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뛰어들자 흑인들에게도 그들의 ‘나라’를 위해 싸울 권리가 주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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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해공군 해병대 가운데 흑인에게 가장 늦게 문호를 개방한 건 해병대였다. 쓸데없는(?) 긍지가 높았던 탓일까, 아니면 거기도 ‘개병대’의 악습이 있었던 것일까. 루즈벨트의 고용 차별 금지 선언 때 해병대 사령관 토머스 홀컴은 이렇게 뇌까린다. “만일 백인 해병 5000명과 검둥이 해병 25만명 가운데 어느 쪽을 지휘할 거냐고 누가 물으면 나는 단연코 백인 부대를 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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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의 입대가 허용됐지만 흑백 차별은 여전히 극심했다. 미국을 위해 싸우겠노라 기세 등등 입대한 흑인들을 기다리는 건 백인 교관들의 살인적인 괴롭힘, 시민들의 외면, 동료 군인들의 멸시였다. 죽기도 많이 죽지만 공 세울 기회도 있고 폼도 나는 전투병과는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흑인들에게는 취사병이나 공병(중에서도 노무자급) 등 업무만 맡겨졌다. 2차대전을 그린 영화에서 흑인 용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개전 후 최초로 훈장을 받은 사람은 흑인이었다. 도리스 밀러. 웨스트 버지니아라는 전함의 요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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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으로 지루하다가 막판 전투신에서만 번쩍 눈이 뜨이던 영화 <진주만> (벤 에플렉 나온) 에서도 이 도리스 밀러가 등장한다. 쿠바 구딩 주니어가 그 역을 맡았다. 도리스 밀러는 일요일 아침 수병들의 식사를 챙겨 주고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천둥같은 소리와 함께 일본군의 공습이 시작된다. 일본군의 맹렬한 폭격 앞에 미국 태평양 함대는 삽시간에 반신불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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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밀러가 타고 있던 웨스트 버지니아도 일본 ...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