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지옥2-선중일기] 1. 배 타기 싫어요(2)

최지수
최지수 인증된 계정 · 전세지옥, 선상일기 저자입니다.
2023/12/07
성가대에 처음 나가기 전 일주일 동안 거의 먹지 않으며 열심히 살을 뺐고 출판한 책 관련 유튜브나 언론에 출연할 때도 붙이지 않았던 마스크팩을 매일 하고 잤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일 날, 그녀라면 절대 이런 불결한 생각은 하지 않겠지만 혹시나 내 입술을 보고 뽀뽀하고 싶어지지는 않을까 상상하며 체리 향이 살짝 섞인 불그스름해지는 립밤을 바르고 얼굴에는 BB크림을 바르고 머리도 밤톨처럼 예쁘게 깎은 후 왁스를 앞머리에 펴 발라  왼쪽 위로 넘겼다. 청록색 카라 긴팔 폴로티를 입고 검은 바지를 입었다. 키가 작은 나의 무릎을 넘어선 갈색 롱 코트를 입었다. 눈높이가 비슷할 정도로 키가 큰 그녀를 조금이라도 아래로 내려다보고 싶어 굽이 있는 가을색 워커를 신었다. 
거울을 통해 본 내 어색한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지만, 다행히도 그녀를 제외한 다른 형제자매들의 반응은 좋았다. 왜 그렇게 예쁘게 입고 왔냐는 형제자매의 말에 나는 가을이라는 말로 대답했다. 누군가는 데이트하고 왔냐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 혼자만의 성당 데이트였다.

미사 전 세 시간 동안 성가대 연습을 하는데 그녀의 애절한 바이올린 소리는 얼마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들었던 오케스트라 심포니의 선율보다 더 아름답게 들렸다. 바이올린 솔로 파트에서 한 번은 참지 못하고 뒤에서 연주하는 그녀를 돌아보니 눈이 부셨다. 그녀 뒤로 햇빛이 투과된 오색의 스테인드글라스 빛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지 않고 그녀에게만 집중적으로 쏟아져 성인의 후광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녀를 차치하고서도 성가대 활동은 너무 좋았다. 신앙에 대한 의심은 꺼지지 않는 불처럼 끊임없이 피어올랐지만, 내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혀 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32년 동안 성가대를 모르고 살았던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다. 신보다는 기흥구 성당을 믿는 느낌이었다. 

이 무렵에는 햇빛을 보지 못해 광합성을 할 수 없는데도 LED 빛으로도 자라는 스마트 농장의 상추처럼 그녀의 존재와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삶에 활력이 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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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를 당했고 그 피눈물 나는 820일의 기록을 책으로 적었습니다. 그 책의 목소리가 붕괴돼버린 전셋법 개정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길 바랍니다. 그 후, 꿈을 이루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배를 탔고 선상에서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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