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무더기로 남은 구례군당 – 빨치산의 흔적을 찾아서 1
2023/05/29
돌무더기로 남은 구례군당 – 빨치산의 흔적을 찾아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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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지리산은 참으로 웅장한 산이다. 금강산은 화려하나 장하지 않고 지리산은 장하나 화려하지 않다고 서산대사가 평했다지만 화려함의 부족을 논하기에는 지리산은 너무 장하다. 삼도에 걸친 영역부터 그렇지만, 이 엄청난 산세 속에 깃들인 생명이 얼마겠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품어 냈겠는가. 예로부터 세상을 피해 숨어든 사람도 많았고 일제 말기 징용을 피한 사람들도 지리산에서 숨을 돌렸다. 그러나 세상을 피하는 것과 세상과 싸우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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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946년부터 1955년까지, 무리해서 늘여 말한다면 1963년까지 한국 역사에 공존했던 ‘빨치산’들의 역사를 돌아본다, 대구 10.1 사건 이후 남로당 계열들이 조직한 야산대가 초보적인 게릴라 활동을 전개한 이후 남한의 단독선거 반대를 명분으로 일어나 끝내 5.10 총선을 무산시켰던 제주도의 4.3 사건은 무장봉기와 유격 투쟁의 무거운 문을 열어젖혔다. 여기에 신생 대한민국의 군대가 합류한 여순 사건 이후 ‘조선인민유격대’의 깃발 아래 뭉쳤던 이들이 궤멸되고 1963년 ‘망실공비’ 정순덕이 체포돼 명맥이 완전히 끊기기까지의 역사는 지금도 뜨겁고 또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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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역사는 명쾌하지만 단순하다. 그리고 너무나 빠진 구석이 많다. 역으로 한국의 ‘진보’라고 부르는 세력, 정확히 말하면 그 속의 민족주의적이자 봉건주의적 (북한의 세습정권을 숭배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사료와 전승만을 택하여 역시 ‘명쾌하지만 단순한’ 혐의를 벗어나지 못하며, 자신들의 현대사에 필요한 신화(神話)의 땔감으로 쓰는 경향이 강하다. 서로의 언덕에서 역사를 바라볼 뿐 사실의 외나무다리를 건너지 못하니 결국 빨치산의 역사는 저마다의 확신으로만 남는다. 즉 북한 공산 집단에 동조하는 불순한 무리를 일망타진한 대한민국의 승리, 반대로는 조국 통일과 민족 해방의 열정으로 고...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