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의 고고인류학 127편 - 베트남의 역사적 전통으로 남아 있는 여성성

알렉세이 정
알렉세이 정 ·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 연구교수
2024/05/13
베트남 전쟁 때는 여인들도 군인으로 동원되었다. 이들은 군복을 입고 직접 총포를 쏘며 참전한 경우도 있었지만 군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평민들 사이에 숨어 미군을 교란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특히 게릴라 전략으로 평민들 사이에 평상복 입고 숨어 미군을 습격하기도 하였는데 이를 빌미로 미군들은 베트남 평민들을 베트콩과 구별하지 못해 대량 학살하곤 했다. 베트남이 여군을 동원한 것은 비단 미국과의 베트남 전쟁 때만이 아니었다. 대 프랑스와의 독립 전쟁 때도 여성 군인들의 끈기와 용맹, 게릴라 전 및 폭탄 의거 등으로 베트남이 독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20세기의 고단한 베트남의 흑역사에서 나타난 여성들로 인해 그 강인한 DNA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사진 : 대학 졸업을 앞두고 전통 복장 아오자이를 입으며 단장하고 있는 베트남 여대생들, 사진출처 : 베트남 호치민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필자의 직접 촬영

종교적으로도 베트남 여성의 의미가 불교에 투영되기도 했는데 베트남 불교는 모계영향을 받는 특성이 있다. 모계제도는 베트남 불교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쳐 베트남 불교를 ‘여성적’ 종교로 만들었다. 인도 출신의 남성 부처님들은 베트남에 들어와 여성 부처님으로 변화됐다. 관세음보살이 ‘관세음 어머님’으로 부르고 있으며, 해양 지방에는 남해관음으로 부르기도 한다. 또한 유교적인 모습도 갖추고 있는데 우리와 마찬가지로 열녀각이 있다. 이는 베트남 11세기 이 왕조 때 유학을 받아들인 이후, 마을의 소문난 효녀와 며느리 등을 선정해 이를 기념하여 그들이 행한 효(孝)를 모범으로 삼도록 했다. 특히 베트남과 같이 모계사회가 강한 곳은 이런 열녀각을 통해 부모와 어르신에 대한 효(孝)에 국가에 대한 충(忠)까지 장착되었다.

베트남에 유독 여성 영웅들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는데 그들의 끈기와 리더쉽 등은 현재 베트남 여성들이 태어나서부터 어머니에게 받은 집안 교육에서 비롯된다. 베트남 여성들은 생활력이 매우 강하며 가정과 육아를 중시했을 뿐 아니라 남편과 이혼해도 절대 아이는 버리지 않고 데려가 키우곤 한다. 남편 없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없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거액의 위약금까지 뜯어내고 그러지는 않는다. 물론 이혼하게 되면 남편의 재산은 반반 나누는 것이 법으로 되어 있지만 오랜 관례상 그들 스스로 이겨내며 살아간다. 수많은 여성 영웅들을 배출한 베트남은 수없이 많은 전쟁과 수탈을 겪으며 여성들이 위기에서 이겨낼 수 있는 지혜들을 터득했다.

베트남의 여성성을 강인하게 키우는 모습은 가정 교육에서도 나타난다. 베트남의 가정 교육은 생각보다 체계가 있다. 우선 그 아이들이 여자일 경우 확실하다. 어쩌고 보면 유교적 관습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베트남이 유학을 받아들인 훨씬 이전부터 생성된 것이었다. 이는 베트남을 건국한 모신(母神) 어우꺼의 생명력을 그대로 전수하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베트남의 잔 다르크와 같은 여성 영웅인 쯩니, 쯩짝이 이끄는 쯩 자매의 독립 투쟁 정신도 여기에 투여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한나라의 수탈에 남편을 잃은 두 자매는 분노하여 한나라 정부에 반기를 들어 일어섰고 당시 베트남 사회는 이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대규모의 독립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결국 복파장군 마원에 의해 독립 투쟁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 주도적인 투쟁 정신을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게 주입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의 여성상은 역사적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베트남 인들을 탄생시킨 창조의 여신인 어우꺼이고, 두번째는 중국 한나라의 지배에 반발하여 저항 반란을 일으킨 쯩 자매이다. 어우꺼가 이상형인 것은 지고지순한 현모양처형을 말하는 것이다. 어우꺼는 아이러니하게도 베트남에 유교가 들어오면서 조선 시대의 여인의 이상형이 신사임당의 이미지인 것과 같이 베트남 여인의 이상형은 어우꺼 이미지로 굳어지게 된다. 그것은 어우꺼가 100명의 자식을 알이 100개 되던 큰 알에서 100명이 나오던 어쨌든 지금의 베트남인이 있게 한 자식을 낳은 전형적인 어머니의 형상이다. 유교에서는 효(孝)를 중시한 나머지 이러한 어머니의 형상이 강한 베트남에 어우꺼의 이미지를 참된 어머니 상으로 투영시켰다. 베트남의 유교는 11세기 이(李) 왕조 시기에 들어왔으며 지금도 하노이에 가면 이 왕조 시대에 만든 문묘가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 수능시험날 되면 베트남의 학부모들이 자식들의 합격을 위하여 문묘의 공자상과 맹자상에 기도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쯩 자매가 이상형인 것은 출세지향형 여성을 말하는 것이다. 쯩 자매의 언니인 쯩짝은 자신의 남편이 한나라 관리에 의해 살해당함으로써 처음에는 남편의 복수를 위해 한나라 관리에게 항거하는 소규모적이고 지극히 가정적인 부분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여기에 동생인 쯩니가 합류한다. 그러나 한나라 정부에서는 이를 탄압했고 이에 범민족적으로 한나라에 항거하는 저항 조직이 결성되었다. 쯩 자매는 이 저항 조직으로 한나라에 멸망한 자신들의 조국 남월(南越)의 부활을 외치며 거국적으로 한나라에 저항하게 된다. 그러면서 쯩 자매는 프랑스의 잔다르크와 같이, 베트남 민족저항운동의 핵심적인 인물로 발돋움하며 일약 민족 지도자의 상징이 된다. 이런 쯩 자매의 이상형은 당시 남성절대주의에 심어져 있는 온갖 편견을 타파하고 여성들의 권리를 찾으며 남성들 일색인 정계나 경제계 등 온갖 사회에 진출해 자신들의 역량을 과시하는 형태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남성들을 이끌고 거국적인 민족저항을 한 쯩 자매는 당시 서기 2세기의 동아시아 사회에서 놓고 볼 때 여성 운동의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라 볼 수 있다. 그만큼 그 시기에는 여성들이 밖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한정되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여성성들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철저히 교육되어지며 베트남 여성들은 두 여성성들이 공존하고 있다. 어우꺼의 여성성은 가정에 충실하고 가정을 가장으로써 이끌어나가며 가정을 먹여살리는 것에 있다. 남성보다 그것은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 나가는게 베트남의 여성사회다. 

그것이 베트남 가정에서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찍소리를 못하는 이유다. 한편 쯩 자매의 여성성은 남자보다 능력이 뛰어나 스스로의 능력으로 대등하게 남성과 경쟁하는 것을 말하는 것에 있다. 호치민은 이러한 쯩 자매의 여성성을 강조하며 어우꺼의 여성성에 억눌려 있던 베트남의 여성들을 해방시켜 사회 진출할 수 있게 해주었고 당당하게 능력만 있으면 남성과 경쟁할 수 있게 개방해주었다. 따라서 베트남의 여성들은 사회 이곳 저곳에서 남성들과 경쟁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으며 양성 평등의 모델이 되고 있다.

🐮 🐄 🥛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얼룩소 시작하기

유라시아의 역사학자 고고학자, 인류학자. 역사, 고고, 인류학적으로 다양하게 조사, 연구하기 위해서 역사, 문화적 체험을 중시하고 하고 있다
350
팔로워 16
팔로잉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