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가세요 박종환 감독님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10/08
안녕히 가세요 박종환 감독님 
   
88 서울 올림픽 이전, 아니 80년대를 통틀어 경기 하나 하나에 온 국민이 숨죽이고 열광하고 나라가 뒤집어질 듯 난리가 났던 스포츠 이벤트가 있다면 뭘 꼽을까. 나는 단연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라고 본다. 요즘으로 하면 U20 월드컵일 것이다. 이 대회에서 한국팀은 꿈에 그리던 예선 통과를 넘어 자그마치 4강 신화를 창출하면서 휴전선 이남의 한반도를 들었다 놨다 했다. 내 나이 또래나 이상의 사람들은 학교에서 수업도 걷어치우고 교실 스피커로 라디오를 듣거나 교무실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경기를 봤던 기억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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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한국팀은 이끈 이가 박종환 감독이었다. 원래 한국 청소년 대표팀은 멕시코 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 당시 아시아 대표 선발 방식은 동부와 서부로 나눠 예선을 치르고 각 예선의 1,2위들이 만나 풀 리그를 펼쳐 선발팀을 결정하는 것이었는데 동부 리그 예선에서 한국은 북한에 발목을 잡혀 3위를 기록하면서 최종 예선 진출이 좌절됐던 것이다. 그런데 19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 축구 8강전에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은 북한 축구팀이 태국 심판을 곤죽이 되게 두들겨 패는 혁명적(?) 본때를 보여주는 일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북한은 2년간 모든 국제경기 출전권이 박탈당했고 그 어부지리를 주운 것이 박종환 감독의 청소년 축구 대표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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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만으로도 그는 꽤 강성(强性)이었다. 청소년 대표팀을 이끌고 태국 국제청소년축구대회에 출전했을 때 심판 판정이 좀 꼴같지 않게 나오자 선수들을 불러들이며 격렬하게 항의했고 태국A팀(국가대표가 9명이나 있었던 사실상의 국가대표팀)과의 경기를 앞두고는 “심판 판정만 공정하면 해 볼 만하다.”라고 일침을 쏘아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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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뿐 아니라 행동도 독했다. 청소년 축구대표팀이 연습경기를 벌일 때 박종환 감독은 이렇게 오금을 박았다. “한 골 먹으면 운동장 열 바퀴 돈다.” 1대0으로 지면 열 바퀴를 뛰었을 뿐이지만 5대2로 이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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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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