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 배상 판결, 책임과 윤리의 문제 (박권일)
2023/02/21
필자 :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토론의 즐거움 멤버)
2023년 2월 7일 서울지방법원 재판부는 1968년 2월 12일 벌어진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63) 씨가 지난 2020년 4월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생존자와 목격자 등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베트남전 참전 중이던 대한민국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1대대 1중대 소속 한국 군인들이 마을 민간인 74명을 집단 살해했다. 재판부는 참전한 한국 군인, 당시 베트남 마을 민병대원 등의 증언과 증거를 바탕으로 응우옌 씨의 주장을 대부분 사실로 인정하며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응우옌 씨)에게 3000만100원과 이에 대한 지연 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열흘 후인 2월 17일, 이종섭 국방장관은 “우리 장병에 의한 학살은 전혀 없었다”며 피해자의 주장 및 증거, 한국 재판부의 판결까지 전면 부정했다.
사태는 진행 중이지만, 과정에서 짚어볼 문제들이 여럿 있는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국가,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문제다.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은 이미 상당히 구체적인 증거와 증언이 확보된 사건이며 그래서 ‘가해자’ 측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재판부조차 그 범죄를 부정할 수 없었다. 사건 자체를 전면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명백한 비윤리임은 말할 나위 없다. 이종섭 국방장관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이런 자들의 논리를 사실 제시와 논증을 통해 더욱 철저히 분쇄하는 것도 유의미한 일이겠으나,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과거에 일어난 국가/공동체의 조직적 범죄에 대해 구성원들에게는 어떤 책임이 있으며 그 윤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나아가서 책임과 윤리란 무엇인가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배경에는 오늘날 공론장을 지배하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단순한 이항대립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강남규(<지금은 없는 시민> 저자), 박권일(<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신혜림(씨리얼 PD), 이재훈(한겨레신문사 기자), 장혜영(국회의원), 정주식(전 직썰 편집장)이 모여 만든 토론 모임입니다. 협업으로서의 토론을 지향합니다. 칼럼도 씁니다. 온갖 얘기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