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존재들: 이데올로기 - 이호철의 <소시민>
사라지는 존재들: 이데올로기 - 이호철의 <소시민>
앞서 죽은 자들의 죽음이 타의적이었다면, 이번에 살펴볼 죽은 자들(강영감, 정씨)의 죽음은 소멸에 가깝다. 그들의 죽음은 더 이상의 삶의 방편을 찾지 못한 자들의 귀결로서의 죽음이다. 일관된 사상을 고집하고자 했던 강 영감과 정씨는 세상에 동화되지 못하고 죽음으로 삶을 마감한다. 그들은 세상의 부조리를 인식하면서도 이에 저항하거나 개혁시키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정씨는 나날이 마음속 空洞(공동)이 커져가는 듯 말수도 적어지고 쇠잔하게 메말라 가며 처음 들어 올 때의 그 호기는 간 곳이 없었다. (118쪽) ...그가 아직 지키고 있는 그 규범과는 거꾸로 소리를 지르며 급강하를 이루어 부서져 가고 흘러가고 있는 이 세상이라는 것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이미 김씨가 그렇고 천안 색시가 그렇고 매리나 주인 마누라와 어울려든 내가 그렇고, 모두가 그렇게 한 색깔로 떨어져 가고 있는 속에서 그만은 아직 완강하게 버티고 있으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버틴다는 것도 이미 어떤 실체가 아니라 차라리 매커니즘같은 하나의 관념이거나 환영이었다. (140쪽)
높은 지식수준을 가지고 있었던 강 영감과 정씨의 죽음은 이 사회에서 요구되는 것은 지식과 고상함이 아닌 생활력임을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