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고졸 출신으로 살아간다는 것
나는 똑똑하진 않았지만 잔머리가 잘 돌아갔다.
중학교 때부터 '이 머리로는 절대로 인서울을 하지 못할거야!' 라는 확신을 가지고 조금은 수월하게 인서울을 하기위해 특성화 고등학교를 들어갔다.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인생 여기서라도 열심히 해보자!' 하고 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어느새 누구나 이름을 말하면 알 수 있는 대기업에 들어와 일을 하고 있었다.
빠른년생인 덕에 19살부터 일을 시작했고 회사가 주는 월급에 그 나이에 누리지 못할 돈의 자유를 맛봤다. 상여급 너란 아이 정말 짜릿하더군.
나이에 비해 많은 돈을 받았다. 회사에대한 자부심과 내 일에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도 했다. '선취업후진학' 이라는 제도로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서울에 있는 공대에 들어가 회사와 병행도 했다. 열심히 하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야근하다 울면서 학교에 간적도, 울면서 시험을 보고 회사 회식에 참여하러 간적도 있다. 힘들었지만 내...
중학교 때부터 '이 머리로는 절대로 인서울을 하지 못할거야!' 라는 확신을 가지고 조금은 수월하게 인서울을 하기위해 특성화 고등학교를 들어갔다.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인생 여기서라도 열심히 해보자!' 하고 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어느새 누구나 이름을 말하면 알 수 있는 대기업에 들어와 일을 하고 있었다.
빠른년생인 덕에 19살부터 일을 시작했고 회사가 주는 월급에 그 나이에 누리지 못할 돈의 자유를 맛봤다. 상여급 너란 아이 정말 짜릿하더군.
나이에 비해 많은 돈을 받았다. 회사에대한 자부심과 내 일에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도 했다. '선취업후진학' 이라는 제도로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서울에 있는 공대에 들어가 회사와 병행도 했다. 열심히 하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야근하다 울면서 학교에 간적도, 울면서 시험을 보고 회사 회식에 참여하러 간적도 있다. 힘들었지만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