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7
에디터님의 질문 "군부가 왜 움직이지 않았는가?"에 대해 제 생각을 적어봅니다.
제 생각엔 87년 대선 후보들 사이 전략적 균형상태, 즉 '힘의 균형'이 생겨서, 군부조차도 선거를 통한 집권이 더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키 플레이어들을 네 명으로 추립니다.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
김대중은 7대 대선에서 박정희를 사실상 이겼다고 봐야합니다. 물론 이견이 있긴 하지만, 71년 대선에서 박정희와 김대중의 표차는 대략 94만 여 표. 관권, 금권선거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했고, 사실상 군인 표 대부분은 박정희가 가져갔음을 감안할 때, 이 수치를 박정희의 승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을 겪은 김대중이 민주화 시대를 여는 선거를 맞이했습니다. 무조건 나가야죠. 군부 독재에서 박정희를 이길 뻔한 사람입니다. 무조건 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겠죠. 후보가 되기만 하면 이긴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입니다.
한편 김영삼은 어떤가요. 83년 단식투쟁을 기점으로, 김대중과 김영삼이 힘을 합쳐 민주화추진협의회를 만듭니다. 관제 야당이 아닌 진정한 반체제 야당이 등장합니다. 85년 총선에서 신한민주당은 한국국민당, 민주한국당 표를 싸그리 가져오며 대승을 거둡니다. 여긴 김영삼 공이 큽니다. 신한당의 총선 참여를 강력...
제 생각엔 87년 대선 후보들 사이 전략적 균형상태, 즉 '힘의 균형'이 생겨서, 군부조차도 선거를 통한 집권이 더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키 플레이어들을 네 명으로 추립니다.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
김대중은 7대 대선에서 박정희를 사실상 이겼다고 봐야합니다. 물론 이견이 있긴 하지만, 71년 대선에서 박정희와 김대중의 표차는 대략 94만 여 표. 관권, 금권선거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했고, 사실상 군인 표 대부분은 박정희가 가져갔음을 감안할 때, 이 수치를 박정희의 승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을 겪은 김대중이 민주화 시대를 여는 선거를 맞이했습니다. 무조건 나가야죠. 군부 독재에서 박정희를 이길 뻔한 사람입니다. 무조건 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겠죠. 후보가 되기만 하면 이긴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입니다.
한편 김영삼은 어떤가요. 83년 단식투쟁을 기점으로, 김대중과 김영삼이 힘을 합쳐 민주화추진협의회를 만듭니다. 관제 야당이 아닌 진정한 반체제 야당이 등장합니다. 85년 총선에서 신한민주당은 한국국민당, 민주한국당 표를 싸그리 가져오며 대승을 거둡니다. 여긴 김영삼 공이 큽니다. 신한당의 총선 참여를 강력...
말씀에 동의합니다. 덧붙여, 우리는 박근혜 탄핵 인용/파면이라는 헌정사상 전대미문의 역사를 쓰면서, 2017년 처음으로 대통령의 궐위로 인한 선거를 헌법에 근거하여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여느 보궐선거와 달리, 당선 후 박근혜의 1년여 남은 잔여 임기를 수행하는 게 아니라, 통상 대선과 같이 5년 임기를 치르는 선거로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 재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다른 선거는 잔여 임기만 수행하고 다시 새롭게 선거를 치르는데, 왜 대선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실제 헌법에는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아 헌법학자들의 해석에 의해 결국 대통령의 궐위로 인한 선거에서 당선된 당선인은 당선 즉시 임기가 시작되고 5년으로 하게 되었거든요.
올리신 글을 읽고 생각해 보니 그럴듯한 상상이 나옵니다. 대통령의 궐위로 인한 선거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당시 대선 후보 4인의 이해관계가 있었다고 봅니다. 만에 하나 이 4인 중 1명이 당선되어 임기 수행 중에 어떤 사건으로 궐위가 발생했을 경우, 잔여 임기만 수행하는 게 아닌 5년 풀 임기를 수행하게끔 하기 위해 결국 이 부분을 모호하게 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입니다.
즉, 1987년 대선에 뛰어든 후보 4명 모두 누구든 해 볼 만한 게임이었으며, 4인 중 누구라도 당선 가능성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설령 그 중 1명이 당선 후 임기 중 사망 등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도 나머지 3인도 그와 동등한 권리로 보궐 선거를 치르면서 동시에 임기는 5년 보장하도록 하기 위해 했다는 거죠.
아마도 이렇게 한 것도 설마하는 마음에 넣어둔 장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설마가 1987년 개헌 후 한 번도 손대지 않고 무려 30년 만에 그 조항을 그대로 써먹을 거라고는 그 당시 대선 후보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겁니다. 개헌이 너무나 험난하기에 역으로 우리는 아직도 1987년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헌법을 그대로 쓰고 있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네요. 차기 정부에서 개헌을 할 지 모르겠지만 개헌을 하게 된다면 이 부분은 명확히 할 필요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또 쓰게 될 날이 올 지는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