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과 방화에 맞선 한인들의 고군분투 - LA 한인타운 흑인 폭동(1992)
2023/01/30
차이와 반복 – 로드니 킹, 타이어 니콜스 그리고 4.29
2023년 1월 27일 미국 테네시주에서 한 성인 흑인 남성 ‘타이어 니콜스’가 백인 경찰들에게 의해 체포 도중에 폭행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무기도 없는 흑인 운전자를 경찰들이 무리하게 제지하고 구타했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30년 전 발생한 ‘로드니 킹’ 사건의 재판이자 반복이라며 또 다시 미국 흑인사회가 들썩거리고 있다. 흑인에 대한 백인 경찰들의 강압적인 태도는 변화하지 않았고, 흑인들의 인권 상황 역시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줄을 잇고 있다. 1992년 4월 29일. 미국 서부 최대도시 로스앤젤레스(이하 LA)에서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폭동이 발생했다. 이 날은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을 폭행한 백인 경찰 4명이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날이었다. 폭력 경찰들이 무죄로 석방되었다는 소식이 긴급속보로 전해지자, LA 전역에서 분노한 흑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처음에는 무죄로 판결한 사법부와 폭력을 행사한 경찰에 대한 항의 시위로 출발했지만, 점점 흥분한 흑인들은 이내 무법자로 변모해 상점을 약탈하고, 도시 전체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LA 흑인 폭동은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빠르게 번져나갔다. 며칠 전 일어난 ‘타이어 니콜스 사건’이나 10년 전 시작된 흑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보면, ...
@권보연. 저는 좀 더 어렸을 때인데도, 저 먼 곳에서 벌어진 일이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그때 아무 것도 몰랐을 때였는데도, 왜 백인 경찰이 흑인을 차별해 폭행하다 죽었는데, 우리나라 사람과 흑인들이 싸울까 이상하다고 생각했네요. 우리 교민들 피해가 컸기때문에 무작정 폭동 일으킨 흑인들 비난하던 당시 한국의 분위기도 어렴풋이 기억나고요. 의견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저때 질풍노도의 고3이었는데, 그 무렵 마침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LA 지역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어서 그쪽 학생들이 한국에 방문하는 이벤트가 있었거든요. 원래 계획이 있었던 거라, 취소 안하고 그냥 왔었나봐요. 그 그룹에 흑인 학생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인종차별적 언행을 삼가고 우호적으로 대하라며 학교가 글로벌 매너 교육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교육이 뭐랄까.. 일차원적이었던거 같아요.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건. 흑인들을 니그로라고 부르면 안된다. 양키고홈도 안된다.
@눈속의사과. 우리 사회에 갈등 이슈가 없을 수 없겠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그 갈등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움직임은 꼴사납습니다. 말씀하신 부분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항상 읽고 댓글 남겨주셔 고맙습니다.
인종차별의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30년 전 사건에 대한 기시감마저 들게 하니 참 안타깝습니다.
비단 인종차별이라는 이슈 뿐 아니라 여전히 사회는 분노의 화살과 책임을 물어야 할 곳이 아닌, 억압받는 다른 집단끼리 서로 갈등을 토로하고 대립하는 모습 또한 답답합니다.
남녀간에, 노소간에 사로 느끼고 날카롭게 대치하는 상당한 이슈들에 대한 원인과 책임의 소지는 정작 따로 있을텐데 말이죠.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박 스테파노. 네. 다인종 국가의 지배와 통치의 일환으로 보면 인종간 구분짓기는 매우 효율적인 전략인 셈이네요. 지배하는 이들 외에 나머지 인종끼리 2등 인종 경쟁이 심화되면 저들끼리 갈등하고 싸우는 일이 벌어지니까요. 서로가 연대할 때에야만 차별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아야겠습니다. 깊이 있는 말씀 감사히 들었습니다.
"통제적 통치"를 보면 다층적인 계층과 계급을 구분지어 그들 간의 경계를 명징하게 선 그어 서로 반목, 경계하게 만들어 사회의 긴장을 유지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몽골의 칭기스칸, 쿠비라이도 출신에 상관업는 등용을 했다고는 지만, 각 민족들을 차등해 관리했다고 합니다. 특히 "색목인"이라는 아라비아계 사람들을 우대했지만, 그들 중 쿠빌라이의 양아들 아흐매드는 쿠데타를 도모하는 등, "2등 시민"의 자의식으로 결국 권력까지 욕심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쿠데타를 인지하고 진압한 것은 "라틴인"었던 마르코 폴로의 정보수집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에 더욱 다민족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서로 견제하게 했다고 하네요.
국가 뿐아니라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이 작은 플랏폼 세상에도 갈라치기가 성행하니까요.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에 대한 오롯한 관심과 이해가 어려운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전장연 시위"와 "화물연대", 그리고 "중대재해 처벌법"에 대한 갈등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sopyoung 늘 감사합니다.
@모모모 코로나 이후 인종 갈등이 더 격화되는 양상입니다. 여러 조건이나 형편이 어려워질수록 상대를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는 부분도 있고, 권력자들은 그것을 방기하는 면도 있죠.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은 백인들이 자신의 위치는 철저하게 고수하면서 타인종들끼리 경쟁하도록 내버려두는 방식인 경우가 많습니다. 2인 인종이란 환상을 버리고 타 유색인종들과 화합하는 길을 모색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지만 말이죠. 감사합니다.
@캘리뽀냐. 교포. 동포.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닉네임을 보니 미국 현지에 계신 분이신 모양입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습관을 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동포 사회는 그래도 별일 없고, 아직 크게 개의치도 않는 모양이군요.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교포라는 표현 대신. 동포라고 써주시면 더 좋을 듯 해요.
현지 한인사회는 긴장은 안 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흑인이 대통령까지 지낸 미국이지만 아직도 인종 간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간혹 접하게 되는 다큐멘터리나 영화 등의 단골 소재로 나오는 인종 갈등이 비단 콘텐츠의 소재가 아니라 진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의 진짜 문제라는 게 너무 무섭네요.
시상식에서 흑인의 인권을 강조하면서 동양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 흑인 스탠드업 코메디언의 발언에 분노를 하면서도 그 분노의 결론이 인종차별 그 자체가 아닌 2등 인종은 어딘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본문에도 잘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글 계속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통제적 통치"를 보면 다층적인 계층과 계급을 구분지어 그들 간의 경계를 명징하게 선 그어 서로 반목, 경계하게 만들어 사회의 긴장을 유지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몽골의 칭기스칸, 쿠비라이도 출신에 상관업는 등용을 했다고는 지만, 각 민족들을 차등해 관리했다고 합니다. 특히 "색목인"이라는 아라비아계 사람들을 우대했지만, 그들 중 쿠빌라이의 양아들 아흐매드는 쿠데타를 도모하는 등, "2등 시민"의 자의식으로 결국 권력까지 욕심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쿠데타를 인지하고 진압한 것은 "라틴인"었던 마르코 폴로의 정보수집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에 더욱 다민족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서로 견제하게 했다고 하네요.
국가 뿐아니라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이 작은 플랏폼 세상에도 갈라치기가 성행하니까요.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에 대한 오롯한 관심과 이해가 어려운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전장연 시위"와 "화물연대", 그리고 "중대재해 처벌법"에 대한 갈등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sopyoung 늘 감사합니다.
@모모모 코로나 이후 인종 갈등이 더 격화되는 양상입니다. 여러 조건이나 형편이 어려워질수록 상대를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는 부분도 있고, 권력자들은 그것을 방기하는 면도 있죠.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은 백인들이 자신의 위치는 철저하게 고수하면서 타인종들끼리 경쟁하도록 내버려두는 방식인 경우가 많습니다. 2인 인종이란 환상을 버리고 타 유색인종들과 화합하는 길을 모색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지만 말이죠. 감사합니다.
@캘리뽀냐. 교포. 동포.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닉네임을 보니 미국 현지에 계신 분이신 모양입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습관을 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동포 사회는 그래도 별일 없고, 아직 크게 개의치도 않는 모양이군요.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교포라는 표현 대신. 동포라고 써주시면 더 좋을 듯 해요.
현지 한인사회는 긴장은 안 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흑인이 대통령까지 지낸 미국이지만 아직도 인종 간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간혹 접하게 되는 다큐멘터리나 영화 등의 단골 소재로 나오는 인종 갈등이 비단 콘텐츠의 소재가 아니라 진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의 진짜 문제라는 게 너무 무섭네요.
시상식에서 흑인의 인권을 강조하면서 동양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 흑인 스탠드업 코메디언의 발언에 분노를 하면서도 그 분노의 결론이 인종차별 그 자체가 아닌 2등 인종은 어딘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본문에도 잘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눈속의사과. 우리 사회에 갈등 이슈가 없을 수 없겠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그 갈등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움직임은 꼴사납습니다. 말씀하신 부분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항상 읽고 댓글 남겨주셔 고맙습니다.
인종차별의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30년 전 사건에 대한 기시감마저 들게 하니 참 안타깝습니다.
비단 인종차별이라는 이슈 뿐 아니라 여전히 사회는 분노의 화살과 책임을 물어야 할 곳이 아닌, 억압받는 다른 집단끼리 서로 갈등을 토로하고 대립하는 모습 또한 답답합니다.
남녀간에, 노소간에 사로 느끼고 날카롭게 대치하는 상당한 이슈들에 대한 원인과 책임의 소지는 정작 따로 있을텐데 말이죠.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박 스테파노. 네. 다인종 국가의 지배와 통치의 일환으로 보면 인종간 구분짓기는 매우 효율적인 전략인 셈이네요. 지배하는 이들 외에 나머지 인종끼리 2등 인종 경쟁이 심화되면 저들끼리 갈등하고 싸우는 일이 벌어지니까요. 서로가 연대할 때에야만 차별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아야겠습니다. 깊이 있는 말씀 감사히 들었습니다.
글 계속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저때 질풍노도의 고3이었는데, 그 무렵 마침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LA 지역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어서 그쪽 학생들이 한국에 방문하는 이벤트가 있었거든요. 원래 계획이 있었던 거라, 취소 안하고 그냥 왔었나봐요. 그 그룹에 흑인 학생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인종차별적 언행을 삼가고 우호적으로 대하라며 학교가 글로벌 매너 교육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교육이 뭐랄까.. 일차원적이었던거 같아요.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건. 흑인들을 니그로라고 부르면 안된다. 양키고홈도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