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아들의 교회 탈출기 (7)

이화경
이화경 · 프리랜서 작가
2024/04/15
8. 엔터테이너의 신학교 입성기   

입시철이 다가왔고 대학과 전공을 택해야 할 시점이 왔다. 그 무렵, 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자유인’이 되어 있었다. 미친 학교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은 미친 척 하는 거였다. 당시의 난 애들 앞에서 광대 짓을 했다. 왜 그런 애들 있잖나. 수업 시간 중에 헛소리 찍찍 해서 애들 웃기는. 그리고 자리 깔아주면 뭐든 다 하는. 내가 그랬다. 애들이 노래를 시키면 나가서 노래했고, 춤을 추라면 춤을 췄다. 선생님들이 수업하다 지겨우면, 
 “야, 이화경! 나와서 노래 하나 해!”
이럴 정도였다. 그럼, 바로 튀어 나가서 불러 제꼈다. 지금의 나를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땐 그랬다. 그러면 아이들이 깔깔대고 좋아했으니까. 서울대는 일찌감치 포기했고, 내신은 줄곧 바닥이었다. 모두들, 명문대를 바라보며 전력질주 하고 있는데, 나는 그 대열에서 조금씩 이탈하고 있었다. 입시에 초연한 척, 자유인인 척 했지만, 사실 속은 불안했다. 그렇게라도 내가 여기에 속해 있다는 걸, 여기에 속한 이들에게 같은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걸 확인해야 했다. 

밤마다 밖으로 나돌았다. 내게 있어 야자는 말 그대로 ‘자율학습’이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그냥 뛰쳐나왔다. 선생님들도 이상하게 나는 안 건드렸다. 고3땐 학교 앞 기숙사에 입주했는데 집에서의 감시가 없으니 더 자유로웠다. 당시 몰두했던 건 영화였다. 시사회란 시사회는 가리지 않고 쫓아 다녔고 주요 영화제도 빠짐없이 챙겼다. 그때 이미 성인의 몰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19금 영화도 자유자재로 볼 수 있었다. 전날 본 19금 영화의 내용들을 아이들 앞에서 쭉 읊어 주면 아이들은 부러워서 죽을라 그랬다. 한번은 내 구라에 혹한 동일이와 몇몇 녀석들이 극장에서 감히 19금 영화 관람을 시도했다가 딱 걸려서 애니메이션 ‘개미’인가를 울며 겨자 먹기로 보고 돌아왔다. 얘네들이 보려고 했던 영화가 아마도 ‘처녀들의 저녁식사’인가 그랬을 거다. 이를 가엾게 여긴 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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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고 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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