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1
이번에도 결론부터 가겠습니다.
페미니스트가 공공재 공급자라는 윗글의 결론이 착시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결론을 조금 더 늘여서 써 보겠습니다.
지난 글에서는 이대남 현상 - 그 현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그 글에서 제시되지 않았음은 일단 재쳐두더라도 - 을 '착시'라고 주장하시면서 '계급의 귀환'을 알리셨습니다. 이대남이, 이십대 남자가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치밀하게 논증해 주셨습니다.
단일 집단으로 간주되던 이대남이 실상은 계급의 구조로 분화됨을 보여주셨던 이러한 치밀함이, 지난 글과는 달리, 왜 페미니스트라는 집단 앞에서 멈추는 것일까요?
이러한 물음에 제가 어떻게 도달하였는지를 지금부터 적어보려합니다.
먼저 이 글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것임을 알립니다. 첫번째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분석방법론의 엄밀성과 자료분석의 과정의 합리성/신뢰성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합리성은 정말 원하는 분석 결과를 얻기 위해 적절한 방법을 택했느냐는 관점과, 다른 사람이 동일한 방법으로 같은 연구를 수행했을 때 동일하거나 최소 유사한 결과를 얻을 것인가에 관련된 것입니다. 두번째는 천관율 에디터의 질문, why가 멈추는 곳이 과연 온당한가를 물을 것입니다. 지난번의 문제제기보다 훨씬 지루하고 까탈스러운 글이 될 것입니다. 질문의 성격에 따라서, (혹시 답변을 쓰시게 된다면) 천관율 에디터보다 고유경 에디터의 답변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군요.
자,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1_집단분류의 적절성
본문에서는 단 한 줄로 k-means clustering을 수행하셨다고 적으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 방법을 수행하는 분석가라면 여기에 얼마나 복잡한 맥락이 있는지 잘 아실 겁니다. 댓글의 일부 또는 이 글을 다루는 트위터 일부에서도 분류의 적절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본글에서는 가독성으로 인해 밝히기 어려우시더라도, 이를 어떠한 기준으로 수행하였는지는 정확히 밝혀주셔야 세 집단으로 나눈 분류의 타당성에 대해 보다 타당성과 신뢰성이 확보될 것 같습니다. ...
페미니스트가 공공재 공급자라는 윗글의 결론이 착시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결론을 조금 더 늘여서 써 보겠습니다.
지난 글에서는 이대남 현상 - 그 현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그 글에서 제시되지 않았음은 일단 재쳐두더라도 - 을 '착시'라고 주장하시면서 '계급의 귀환'을 알리셨습니다. 이대남이, 이십대 남자가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치밀하게 논증해 주셨습니다.
단일 집단으로 간주되던 이대남이 실상은 계급의 구조로 분화됨을 보여주셨던 이러한 치밀함이, 지난 글과는 달리, 왜 페미니스트라는 집단 앞에서 멈추는 것일까요?
이러한 물음에 제가 어떻게 도달하였는지를 지금부터 적어보려합니다.
먼저 이 글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것임을 알립니다. 첫번째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분석방법론의 엄밀성과 자료분석의 과정의 합리성/신뢰성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합리성은 정말 원하는 분석 결과를 얻기 위해 적절한 방법을 택했느냐는 관점과, 다른 사람이 동일한 방법으로 같은 연구를 수행했을 때 동일하거나 최소 유사한 결과를 얻을 것인가에 관련된 것입니다. 두번째는 천관율 에디터의 질문, why가 멈추는 곳이 과연 온당한가를 물을 것입니다. 지난번의 문제제기보다 훨씬 지루하고 까탈스러운 글이 될 것입니다. 질문의 성격에 따라서, (혹시 답변을 쓰시게 된다면) 천관율 에디터보다 고유경 에디터의 답변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군요.
자,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1_집단분류의 적절성
본문에서는 단 한 줄로 k-means clustering을 수행하셨다고 적으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 방법을 수행하는 분석가라면 여기에 얼마나 복잡한 맥락이 있는지 잘 아실 겁니다. 댓글의 일부 또는 이 글을 다루는 트위터 일부에서도 분류의 적절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본글에서는 가독성으로 인해 밝히기 어려우시더라도, 이를 어떠한 기준으로 수행하였는지는 정확히 밝혀주셔야 세 집단으로 나눈 분류의 타당성에 대해 보다 타당성과 신뢰성이 확보될 것 같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트레버님
어떻게 들리실 지 모르겠지만 "일반인이 잘 알아든지 못하는 복잡한 분석방법"을 연구자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잘못 이용해서 견강부회성 결론을 도출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봐 왔습니다. k-means clustering은 비교적 단순한 분류방법이지만 이를 올바르게 사용했다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연구자의 의무라 생각합니다. 이 긴장이 풀리는 순간, 방법론 적용의 오/남용으로 잘못된 논지로 흐르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k-means clustering 썼다 한 줄로 끝날 일은 아닙니다.
덧붙여 사회학 연구자들의 연구결과를 읽는 일은 연구자들에게도 힘든 일입니다. 엄청난 지적 긴장과 노력을 요합니다. 잘 쓰인 논문 한 편 한 편은 최소 지난 100년간의 논쟁과 연구자가 거기에 기반해서 지식의 최전선을 어떻게 넓혔는지, 그 과정에서 오류를 피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첨단의 방법론에 기반하여 쓰는 거니까요. 그 gap을 채울 콘텐츠와 필자가 부족한 것과는 별개로, 논문은 애초에 편하게 읽을 수 없는 글에 가깝다 생각합니다.
@이비세님
말씀하신 논지는 20대 페미니스트/안티페미니스트의 생계부양자/비부양자가 random하게 분산되어있다면, 다시말해 생계부양 여부가 페미/안티페미와 독립이라면 합당합니다. 다만 제가 가정한 것과 같이, 20대 페미니스트에는 생계비부양자의 비중이 극단적으로 높고, 20대 안티 페미니스트의 경우에 생계부양자의 비중이 극단적으로 높다면, 페미니스트 성향이 생계부양 여부에 영향을 받으므로 공공재 공급 의사는 페미니스트 성향이 아닌, 생계부양 여부가 주 요인일 수 있습니다. 제가 강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이러한 제3의 요인의 가능성이 본문에서 거의 검토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음... 제가 연구자라면 본인의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소구력있게 쓰는데 집중할 것 같습니다. 일단 이 모든 걸 저 같은 일반인이 다 알아듣기도 어렵고요. 전국민이 사회학 학사 이상의 지식을 갖출 수도 없을 거 같고요. 쓰신 글에 부합하는 내용의 콘텐츠를 내놓는게 누군가의 글을 비판하는 것보다 더 의미있는 작업일거 같습니다.
기자조차 학술연구에 사용되는 수준에 준하는 이상(이라고 표현하신) 의 기사를 생산하는데 연구자가 그걸 비판하는 것도 중요한 사회적 책임이겠지만..왜 전 이나라의 그 무수한 사회학 연구자들의 연구결과를 편하게 읽을 수 없었던 것일까요? 학술지에 발표된 그것들도 꽤 읽어봤습니다만...음.. 저 그때가 더 이게 뭔가 싶었거든요. 일단 잘 읽히지 않았다는 걸 차지하고서라도 말입니다. 제 무지가 죄겠지만요.
이 답글에 대한 한 가지 의문점입니다.
20대 페미 집단은 생계부양자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20대 안티페미집단, 중립집단도 20대이고 생계부양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금을 안 내서 이상론적인 소리를 하는 거라는 가설이라면 그건 안티페미와 중립 집단도 20대이므로 똑같지 않나요?
혹시 성별에 따른 추정이라면... 20대 경제활동참가율은 남녀가 비슷합니다. 2020년 통계청 발표로 20대 경제활동참가율은 남성 63.4%, 여성 64.3%라고 하네요.
본문의 연구는 사실상 안티페미집단, 페미집단, 중립집단의 셋으로 나누었을 때 '비교적' 안티페미집단일수록 곤란한 이웃이라는 결론 아닐까요. 제목이 '페미니스트는 누구인가'여서 그렇지 '안티페미니스트는 어떤 이웃인가'에 대한 답도 되는 데이터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안티페미니스트일수록 대체로 곤란한 이웃이다라는 표면적 결과에 대해서만 말했지, 안티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곤란한 이웃이다라거나 페미니스트라서 좋은 이웃이라는 식으로 인과에 대해 말하지는 않은 것같습니다. 인과에 대해 말하려면 물론 말씀대로 계급 등 여러 변수를 통제해야 할 것입니다.
6번 문항 기준으로 소수자 배제적 페미니스트를 다른 집단으로 두고 조사해야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소수자 배제 페미니스트의 특성은 오히려 안티페미니스트와 상당 부분 동일할 거라고 개인적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극렬 ,극단 페미니스트 등의 용어가 아니라 소수자 배제적 페미니스트라고 정확히 불러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을 더 명확하게 비판할 수 있습니다.
이 답글에 대한 한 가지 의문점입니다.
20대 페미 집단은 생계부양자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20대 안티페미집단, 중립집단도 20대이고 생계부양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금을 안 내서 이상론적인 소리를 하는 거라는 가설이라면 그건 안티페미와 중립 집단도 20대이므로 똑같지 않나요?
혹시 성별에 따른 추정이라면... 20대 경제활동참가율은 남녀가 비슷합니다. 2020년 통계청 발표로 20대 경제활동참가율은 남성 63.4%, 여성 64.3%라고 하네요.
본문의 연구는 사실상 안티페미집단, 페미집단, 중립집단의 셋으로 나누었을 때 '비교적' 안티페미집단일수록 곤란한 이웃이라는 결론 아닐까요. 제목이 '페미니스트는 누구인가'여서 그렇지 '안티페미니스트는 어떤 이웃인가'에 대한 답도 되는 데이터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안티페미니스트일수록 대체로 곤란한 이웃이다라는 표면적 결과에 대해서만 말했지, 안티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곤란한 이웃이다라거나 페미니스트라서 좋은 이웃이라는 식으로 인과에 대해 말하지는 않은 것같습니다. 인과에 대해 말하려면 물론 말씀대로 계급 등 여러 변수를 통제해야 할 것입니다.
6번 문항 기준으로 소수자 배제적 페미니스트를 다른 집단으로 두고 조사해야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소수자 배제 페미니스트의 특성은 오히려 안티페미니스트와 상당 부분 동일할 거라고 개인적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극렬 ,극단 페미니스트 등의 용어가 아니라 소수자 배제적 페미니스트라고 정확히 불러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을 더 명확하게 비판할 수 있습니다.
@트레버님
어떻게 들리실 지 모르겠지만 "일반인이 잘 알아든지 못하는 복잡한 분석방법"을 연구자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잘못 이용해서 견강부회성 결론을 도출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봐 왔습니다. k-means clustering은 비교적 단순한 분류방법이지만 이를 올바르게 사용했다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연구자의 의무라 생각합니다. 이 긴장이 풀리는 순간, 방법론 적용의 오/남용으로 잘못된 논지로 흐르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k-means clustering 썼다 한 줄로 끝날 일은 아닙니다.
덧붙여 사회학 연구자들의 연구결과를 읽는 일은 연구자들에게도 힘든 일입니다. 엄청난 지적 긴장과 노력을 요합니다. 잘 쓰인 논문 한 편 한 편은 최소 지난 100년간의 논쟁과 연구자가 거기에 기반해서 지식의 최전선을 어떻게 넓혔는지, 그 과정에서 오류를 피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첨단의 방법론에 기반하여 쓰는 거니까요. 그 gap을 채울 콘텐츠와 필자가 부족한 것과는 별개로, 논문은 애초에 편하게 읽을 수 없는 글에 가깝다 생각합니다.
@이비세님
말씀하신 논지는 20대 페미니스트/안티페미니스트의 생계부양자/비부양자가 random하게 분산되어있다면, 다시말해 생계부양 여부가 페미/안티페미와 독립이라면 합당합니다. 다만 제가 가정한 것과 같이, 20대 페미니스트에는 생계비부양자의 비중이 극단적으로 높고, 20대 안티 페미니스트의 경우에 생계부양자의 비중이 극단적으로 높다면, 페미니스트 성향이 생계부양 여부에 영향을 받으므로 공공재 공급 의사는 페미니스트 성향이 아닌, 생계부양 여부가 주 요인일 수 있습니다. 제가 강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이러한 제3의 요인의 가능성이 본문에서 거의 검토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음... 제가 연구자라면 본인의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소구력있게 쓰는데 집중할 것 같습니다. 일단 이 모든 걸 저 같은 일반인이 다 알아듣기도 어렵고요. 전국민이 사회학 학사 이상의 지식을 갖출 수도 없을 거 같고요. 쓰신 글에 부합하는 내용의 콘텐츠를 내놓는게 누군가의 글을 비판하는 것보다 더 의미있는 작업일거 같습니다.
기자조차 학술연구에 사용되는 수준에 준하는 이상(이라고 표현하신) 의 기사를 생산하는데 연구자가 그걸 비판하는 것도 중요한 사회적 책임이겠지만..왜 전 이나라의 그 무수한 사회학 연구자들의 연구결과를 편하게 읽을 수 없었던 것일까요? 학술지에 발표된 그것들도 꽤 읽어봤습니다만...음.. 저 그때가 더 이게 뭔가 싶었거든요. 일단 잘 읽히지 않았다는 걸 차지하고서라도 말입니다. 제 무지가 죄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