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의 고고인류학 230편 - 지난 17일 크로아티아 총선에 대한 분석 - 친서방 정당인 여당의 승리와 새로운 다크호스의 등장

알렉세이 정
알렉세이 정 ·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 연구교수
2024/06/03
이번 크로아티아의 선거는 여러모로 특이했다. 2000년 선거 이후 무려 24년만에 실시되는 평일 선거였던데다 대통령인 조란 밀라노비치(Zoran Milanović)가 대통령 직함을 내려 놓고 스스로 사민당 후보로 출마하겠다는 것이다. 이 또한 대통령이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와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전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헤프닝을 벌인 것이다. 크로아티아는 2000년 개헌 이후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차원에서 대통령의 당적 소유를 금지하고 있다.
사진 : 크로아티아 총선 광고 출처 : HRT 크로아티아 국영방송

밀라노비치는 이를 무시했기 때문에 3월 18일 크로아티아 헌법재판소는 밀라노비치가 대통령직에서 사임하지 않는 한 후보가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밀라노비치는 이러한 헌재의 판결에 불복하고 사실상 총리 후보로 행세하면서 사민당 주도 정의의 물결 연합 유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정당한 탄핵 사유가 될 수 있기에 크로아티아 민주연합과 그의 정적인 안드레이 플렌코비치가 밀라노비치의 탄핵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선거는 예상대로 크로아티아 민주연합이 주도하는 HDZ 연합의 승리로 끝났다. 이로써 현직 총리인 안드레이 플렌코비치의 3기 정부가 출범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 되었자만 HDZ 연합이 집권에 필요한 단독 과반인 76석에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밀라노비치 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결은 어려울 전망이다. 그래서 플렌코비치 총리는 4월 18일부터 3기 정부 구성을 위한 연정 협상에 나서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HDZ 집권 후 2018년부터 연이어 부패 스캔들이 일어나면서 국민들의 신망을 잃은데다 국민들 상당수가 크로아티아 사민당을 더 싫어했기 때문에 HDZ에 표를 던진 사람들이 많았다. 

즉, 사민당이든, HDZ든 둘 다 싫은데 그나마 덜 싫은 쪽으로 표를 던졌다는 얘기다. 더불어 EU와 나토를 비판한 국수주의 포퓰리즘 정당인 사민당이 2위로 부상하였지만 HDZ에 실망하는 국민들 또한 늘어나면서 사민당에 표를 던진 결과이기도 하다. 더불어 고물가로 인해 민생 경제가 어려워지고, 집권 세력의 부패 범죄에 대한 분노가 양측의 대립을 팽팽하게 했다는 분석 또한 나타나고 있다. 

크로아티아 사민당이 이끄는 범좌파 야권 연대인 정의의 물결은 고작 2석을 늘리는데 그쳤다. 반대로 HDZ는 전체 의석 151석 중 60석을 차지했다. HDZ는 지난 2020년 총선에서는 66석을 차지했지만, 6석 줄어들었다. 이는 제3의 정당, 새로운 다크호스가 등장했다는 얘기다. 물론 사민당은 정권 탈환에 실패했다. 조란 밀라노비치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무시하고 탄핵을 각오하면서 유세에 나섰지만 목표였던 정권 교체에 이르기에는 크게 부족했다. 

사민당의 대표인 페자 그르빈(Peja Grvin)은 더 나은 결과를 원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소감을 밝힌 뒤, 우선 야당 정부 구성 관련한 회담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크로아티아 총선에서 HDZ는 좌파 혹은 우파 정당과 과반인 76석을 확보해야 내각을 꾸릴 수 있다. 원래 HDZ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었지만 밀라노비치 대통령이 갑자기 사민당 후보가 되겠다고 선언하면서 판세가 요동쳤다. 1991년 독립 이래 한 번도 권력을 내준 적 없는 HDZ, 현 정권에 대한 군중들의 심판론까지 작동한 것이다.

HDZ가 집권하면서 크로아티아의 EU 가입과 유로화 도입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여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 극도의 쇠락을 보인 크로아티아 경제에 한 가닥 희망이 보였다. 이 때만 해도 EU는 지금의 EU와 달리 매우 정상적인 운영을 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무려 30명의 장관이 임기 중에 부패로 사임했다. 더불어 제조업이 매우 약해 수입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와 더불어 독일을 중심으로 한, EU 보조금에 대한 과도한 의존율, 지나치게 의존율 높은 관광업, 이와 같은 취약한 경제 구조에 대한 개혁을 이끌어 내지 못하여 국민들의 신뢰도 점차 잃어갔다. 

관광 산업 의존도가 높은 크로아티아 경제 특성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와 코로나로 인한 경기 침체는 유권자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또한 HDZ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괴뢰 정부에 부역한 이들이 많고 우스타샤(Ustaša) 파시즘 출신들이 많다. 우스타샤 출신자들, 이들의 후예들은 대를 이어 크로아티아 정계를 장악해왔고 온갖 비리와 부패의 주범이 됐다. 나치의 부역한 이들이 처벌받지 않고 버젓이 정계에서 활동하고 있어도 EU는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발칸 지역의 나치들에 대한 청산률은 2~30%에 불과했는데 이처럼 낮은 청산률과 유고슬라비아가 붕괴된 이후에도 이에 대해 문제 삼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EU 또한 나치와 공범이나 다를 바 없다. 나치의 절멸을 천명한 러시아가 EU의 이런 비정상적인 행태를 비판해왔던 것이다. 조란 밀라노비치 대통령은 현 HDZ 정권의 부패 정치인들과 경제 실정을 비판하면서 자국 경제에 부담을 주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꾸준히 반대해왔다. 그리고 크로아티아 내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훈련시키는 것에 대해 극도로 반대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더불어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이에 대한 개선을 촉구했었다. 이러한 밀라노비치의 행동에 러시아는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보이기도 했다. 밀라노비치 대통령이 EU, 미국, 나토에 회의적 태도를 보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중에 하나다. 크로아티아가 1991년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이후 서방 동맹에 대한 확고한 지지 의사는 모든 정당에 걸쳐 내려진 합의였지만, 밀라노비치는 이를 뒤집은 셈이다. 플렌코비치 총리는 그 이전에도 밀라노비치 대통령의 친러시아 정책을 반복적으로 비난해왔다. 그러나 밀라노비치의 이와 같은 정치적 스탠스는 크로아티아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사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성원으로 인해 그는 원내 최대 야당의 대표가 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특수군사작전을 벌인 지난 2년여 동안 크로아티아는 EU 회원국들 중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확실한 국가로 분류되었으나, 이제 그 입장은 밀라노비치 대통령과 사민당이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려 있게 된 것이고 민주연합이 연정에 실패한다면 크로아티아 헌법과 선거법에 따라 재선거를 해야 한다. 그리고 민주연합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면서 이전과 같은 발언권이 매우 약화된 결과를 가져왔다. 

이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난민 받아들이기 등에 크로아티아 국민들이 매우 피로해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크로아티아 국민들의 반응도 2022년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특수군사작전을 감행할 때와 사뭇 다르다. 그때는 우크라이나를 응원하며 러시아를 침략국으로 규정하고 규탄했지만 이제는 크로아티아가 최악의 경제난을 벗어날 수 있다면 러시아를 지지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 이번 크로아티아 총선 투표율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크로아티아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투표율이 61.83%로 2020년 마지막 선거의 47%에 비해 상승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제는 사민당과 HDZ를 대신할, 제3의 정당이 새로운 닼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그 정당이 바로 조국운동 연합당(Domovinski pokret)이다. 2019년 크로아티아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낙선했던 미로슬라브 스코로(Myroslav Skoro)가 이듬해인 2020년 2월 29일 총선을 앞두고 창당한 정당으로 강성 우파 성향을 갖고 있다. 조국운동당이 이번에 14석을 확보하면서 양대 정당을 저울질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조국운동 당 대표 이반 페나바(Ivan Penava)는 조국운동 연합이 앞으로 크로아티아의 운명을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당 성향 상으로는 HDZ 쪽이 상대적으로 가깝긴 하지만, 양당 내에 연정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반면 밀라노비치 대통령이 이끄는 정의의 물결은 아예 HDZ를 배제한 거국 내각을 구성하자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에 조국운동의 행보에 따라 추후 정권 구성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HDZ보다 더더욱 우익적인 면모를 과시할 것으로 보여 EU, 친서방보다는 다극화 세계의 일환으로써 크로아티아 경제 회복을 위해서라면 누구든 손을 잡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새로운 다크호스의 향방에 따라 크로아티아가 어떤 길로 방향을 잡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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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의 역사학자 고고학자, 인류학자. 역사, 고고, 인류학적으로 다양하게 조사, 연구하기 위해서 역사, 문화적 체험을 중시하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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