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준
지준 · 자주, 그리고 오래 쓰고자 노력하며
2023/03/11
며칠 전, 오래된 친구들과 간단한 술자리를 가졌다. 어릴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이기에 서로의 가정사와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흑역사, 그리고 어른으로 성장하기 전, 철없던 서로의 모습을 온전히 목격해 온 친구들이었다. 그들과는 미래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며, 때로는 최근 이슈가 된 사건·사고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대화의 주요 주제는 언제나 가볍고 시시콜콜한 농담과 과거에 대한 추억 팔이와 회상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가벼운 대화가 말해주듯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상당히 편한 존재였다. 서로를 그다지 특별한 존재로 여기지는 않았지만 성장한 사회인의 모습이 아닌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었기에 서로가 편한 관계인 것은 분명했다. 그렇기에 모이기만 하면 10대 시절로 회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특별하진 않더라도 부담 없는 그런 관계였다. 이렇게 편한 사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래 보고 싶은 사람들이 되었고 그렇기에 서로의 의견에 날을 세우는 행동보다는 ‘그래그래’ 하고 넘기는 분위기가 이 집단의 전반적인 기조였다.
   
하지만 며칠 전 나눈 대화는 살벌함 그 자체였다. 나이를 먹은 탓이었을까? 아니면 날씨가 흐린 탓에 조금은 예민해진 게 원인이었을까? 그날의 대화는 3.1절에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단 ‘한국인’의 이야기로 시작됐다. 이내 대화의 흐름은 학교 폭력과 청소년 보호법 폐지, 무섭게 치솟는 물가 상승, 그리고 오늘날 우리 사회의 소비 조장과 과소비에 대한 문제점까지 제기되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의견은 제각각이었으며, 때로는 언성이 커지기도 했다. ‘그래그래’ 하고 넘기는 이 집단에서는 이례적인 ‘언성’이었다. 나 역시 사회생활을 하면서 죽었던 열정들이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모처럼 되살아나고 있음을 느껴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한 친구는 그야말로 치열한 100분 토론장이 따로 없었다며 당시의 생생했던 전투(?)의 후기를 전해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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