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놈의 심보로 바람막이 싸게 구하기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4/01/17

바람막이를 반드시 필요한 생필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패션의 철학에 따라 바람막이 따위는 절대 입지 않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옷차림에는 바람막이가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 편이고, 어울린다 하더라도 스포츠 감독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니까. 그런 사람들은 필시 바람이 불어 약간 쌀쌀할 때는 카디건을 애용하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산에 간다면 겨울이든 여름이든 바람막이를 목숨처럼 갖고 다니지 않을 수가 없다. 바람을 막아줄 구조물이 사라지는 능선이나 정상에 올라서면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대서 정신을 쏙 빼놓는 것은 물론이고 체온까지 탈탈 털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카디건 따위로 버티다간 저체온증에 빠지기 십상이다. 등산 따위 하지 않으니 나는 상관없는 얘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요즘은 날씨가 너무나 심하게 변화하는 만큼 여름이나 가을에도 바람막이 하나쯤 갖고 다니는 편이 건강에 이롭다. 바람막이가 없다면 할인 기간에 하나쯤 구비하길 권하고 싶다.

나는 원래부터 가볍게 걸치고 다니며 체온을 보존할 수 있는 바람막이를 좋아한 편이고, 가족 중에서 세 명이 사이즈를 공유한 터라 바람막이가 여섯 벌이나 있었다. 덕분에 등산을 시작하면서도 걸칠 옷에 부족함을 느끼진 않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용하게 써먹기 좋던 유니클로의 바람막이가 노후되어 방수 코팅이 여기저기 바스라진 이후로 새 바람막이를 찾기 시작했다. 나머지 다섯 벌 중에서 세 벌은 너무 얇았고 한 벌은 후드가 없었으며, 나머지 한 벌은 무거웠기 때문이다. 가죽 코트 수준이 아닌 다음에야 무거워서 입기 힘든 옷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이 바람막이는 무게를 재보니 540g으로 바람막이보다는 가벼운 점퍼에 더 가까운 물건이었다. 일상용으로 쓴다면야 아무 문제도 없지만, 중력을 거스르고 산 위로 올라가는 과격한 운동에 이렇게 묵직한 옷을 입고 다니고 싶진 않았다. 산에 올라갈 때는 눈썹도 떼어놓고 가는 법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리하여 결국 이상적인...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135
팔로워 23
팔로잉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