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喪主)
“제가 상주인데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이틀째 되는 날 저녁이었다. 장례식장은 조문객으로 다소 소란스러웠다. 아버지의 고향 친구라고 하는 이들은 한쪽에서 담배를 피우며 화투를 치고 있었고, 술이 모자를 때마다 종업원 부르듯 검은 한복 치마를 입고 있는 지현에게 소주를 가져다 달라고 하고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아버지의 직장 상사가 나의 옆에서 함께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는 성현에게 이야기했다. ‘상주분이 젊으신 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이었다.
“지희야.”
성현의 말에 나는 목젖 밑에서 올라오는 그것을 삼켰다. 아버지의 상사는 멋쩍은 듯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말하곤 장례식장에 오는 다른 직장 동료를 찾아 자리를 떠났다. 아버지가 자신의 단명을 예측한 듯 가입해 놓으셨던 상조에서 오신 분들 덕분에 조문객을 대접하는 일이 생각했던 것만큼 고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슬픔에 잠겨 있지는 않았다.
“지희는 내 자식이니까 잘 할 수 있을 거다.”
아버지와 대화할 때면 항상 들었던 말이었다. 이젠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와 이혼한 후 나에게 말했던 것이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아버지는 두 살 터울의 동생 지현을 ‘여자아이’를 키우는 방식으로 키웠고, 나를 ‘장남’처럼 대했다.
“여자로서는 힘든 일이지만 군인으로서는 견딜 수 있는 일입니다.”
열 네 살 즈음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짧은 머리의 여생도가 한 눈에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군장을 등에 매고 언덕을 올라갈 때 카메라를 향해 했던 말이었다. 그녀는 내 우상이 되었다. 역사 시간에 배웠던 안중근 의사의 <위국헌신(爲國獻身), 군인본분(軍人本分)>만큼 그녀의 말이 명언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녀를 따라 머리를 짧게 자르고,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육군사관학교를 목표로 하며 그녀의 말을 독서실 책상에 붙였다.
육군사관학교를 떨어지고 누군가는 대학 생활의 로망으로 CC나 동아리, 밤샘 술자리 등을 생각할 때 나는 삼사관학교에 편입해 오래 전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그녀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