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와 발화자의 분리라는 한계, 혹은 가능성 -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음향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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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문화비평
2023/10/28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

주체와 발화자의 분리라는 한계, 혹은 가능성 -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음향효과
   
레이첼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고 집으로 돌아온 데커드는 그녀와 정사를 갖는데, 그녀에게 “당신을 원해요 I want you”라고 말한 후 이를 그대로 반복하게 한다. ‘상대방에 대한 욕망을 명령/지시한다’는 이 아이러니는 데커드가 드러내는 강압적인 제스처와 함께 의심의 여지 없이 ‘성차’ 혹은 ‘미투의 정치학’ 속에서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현상(학)적 차원에서 저 문장의 발화자는 레이첼이지만, 그 문장이 그녀의 자발적 욕망에 대한 증거라고 믿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발적 주체성의 담지자로 간주되는 ‘주체’와 문장의 ‘발화자’ 사이에 놓인 이러한 간극은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흥미로운 방식으로 변주된다. 에머네이터 emanator를 통해 집 안에 천장에 설치된 ‘장소특정적’ 장치로부터 자유로워진 조이가 “당신과 함께 있으면 너무 행복해요 I’m so happy when I’m with you”라고 말하자, “그런 말 할 필요 없어 You don't have to say that”라고 K가 언뜻 무미건조한 톤으로 되받는 장면이 그곳이다.

방금 나는 ‘언뜻’이라는 부사를 덧붙였는데, 그것은 K의 이 차가운 목소리 톤이 무관심이나 감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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