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과 이준석들의 세계

노경호
노경호 · 연구자
2022/11/28
(2021년 5월 25일에 쓴 글입니다.)

이준석이 국민의 힘 대표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졌다는 뉴스를 본다. 나는 이준석을 볼 때마다 단지 '실망'이나 '좌절'을 넘어 거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곤 한다. 그런 감정이 어디서 연원한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마지막 문단에 인용문으로 밝혀놓겠다.

그는 기성 정치인들 중 몇 안 되는 논리적인, 그러니까 논변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논변으로 말한다는 것은 전제와 결론을 갖추어 이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그에게는 보수이되 '합리적'이라는 평가가 따라왔고, 그 자신은 지난 총선 이후 터졌던 광기어린 음모론과 거리를 둘 수 있기도 했다. 

아마도 그런 배경에는 그가 그토록 자신감 있어하는 '토론 능력'이 있다. 언젠가 대학시절 배우고 경험한 토론 잘하는 법을 그는 내세운 적이 있다. 대학토론배틀에서 심사위원? 혹은 단계별 보스몹 같은 무언가로 출연한 적도 있다. 그가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 모든 공직 후보자들에게 토론 능력을 포함해 여러 능력을 검증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것도 나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나는 이준석이 각광을 받는 바탕이 되었던 '말하는 이준석'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는 곧 언론이 이준석을 활용한 방식과도 연결된다. 그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1) 언론과 언론 소비자는 '정치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줄곧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개별적 사실들'에 대한 관심으로 축소시키거나, 혹은 혼동해왔다. 언론에서 조성하는 '공론장'은 우리 삶과 아무런 상관없는 '권력 게임'을 중계하는 것과 같다. 소위 말하는 '정치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고 사사건건 그것에 대해 비판의 소지를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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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대철학과 정치철학을 공부합니다; 번역: <정치철학사>(공역, 도서출판길, 2021), <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23); 신문 <뉴스토마토> 시론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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