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7월 6일 최대의 살상무기 발명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7/06
산하의 오역 (오늘의 역사)  
1947년 7월 6일 최대의 살상무기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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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7년 7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한 발명품의 발명 60주년을 맞아 열린 기념식에서 이렇게 연설한다. “이것이야말로 러시아의 발명품 중 으뜸입니다.... 우리 러시아 인민의 재능과 창조적 천재성의 상징입니다. ” 찬사가 하늘에 닿는다.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아니다. 가가린을 태우고 우주를 돈 보스토크호? 아니다. 나찌의 기갑군단을 무찔렀고 우리 국군도 혼쭐이 났던 명품 탱크 T-34? 아니다. 푸틴의 극찬의 대상은 총 한 자루였다. 바로 AK 47. 1947년 7월 6일 소련군 병사 칼라시니코프는 그를 포함한 기술자들이 개발했던 여러 총들의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하여 이 총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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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2차대전 때 소련군들의 죽음을 불사한 돌격은 독일군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절망적인 상태에서도 소련군들은 ‘황소 울음같은’ (독일군 장교의 회교) 함성을 내지르며 돌격해 왔고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로 남았다. 그때 소련군 사이에서는 “조국 러시아에는 남자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우리는 그냥 죽어도 된다)”는 말이 돌았다고 하는데 칼라시니코프의 형제들을 보면 그 말이 이해가 된다. 그의 어머니는 19명의 아이들을 낳았다고 전하니까.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소총 개발자)도 자신이 몇 번째인지 헛갈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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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생으로 독일이 300만 대군으로 소비에트 연방을 들이칠 당시 스물 두 살이었던 칼라시니코프는 징집 1순위였고 그는 기갑부대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독일군과 싸운다. 그러나 무기 성능에 관한한 소련군은 독일군의 상대가 못됐다. 반격 작전을 펴다가 참패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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