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과 연개소문, 그리고 오늘 우리 외교는
2023/04/20
서기 642년은 동북아시아에서 매우 중대한 해였다. 641년 즉위한 백제 의자왕은 신라를 멸망시키겠다는 듯 총공세를 전개한다. 7월에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신라 서쪽 변경 40여 성을 함락시켰고 8월에는 장군 윤충을 보내 신라 최고의 요새 대야성을 함락시킨다. 신라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대야성 전투에서 딸과 사위를 잃은 김춘추는 대청마루에 하루 종일 멍하니 서서 사람들이 앞을 오가도 못알아볼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컸겠지만 나라가 망할 것 같은 암담함도 못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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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성 함락 몇 달 뒤 김춘추는 고구려로 향한다. 대담한 외교전이었다. 고구려는 백제와 가까워져 있었고, 당나라와 맞선 상황에서도 심심찮게 칠중성 등 신라 국경을 공격해 왔다. 그런 상황에서 김춘추가 고구려를 방문한 것은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승부수였다. 김춘추의 목적은 백제와 고구려의 연계를 끊어 적을 하나라도 줄이려는 것이었을 테고, 이를 위해 백제와 고구려의 원한을 일깨우고 신라와 고구려의 전통적 우호 관계 (한때 고구려는 신라를 속국처럼 여겼다.)를 상기시키며 백제보다는 신라가 고구려에 유리한 파트너임을 부각시켰을 것이다. “우리랑 군사 동맹을 맺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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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입장은 어땠을까. 고구려의 집권자는 알다시피 연개소문이었다. 그의 대답은 김춘추의 머리털을 세우기에 충분했다. “신라가 차지한 죽령 이북의 땅은 원래 우리 땅이었잖소? 그 땅을 우리에게 돌려 주면 신라를 돕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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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최악의 외교적 패착이었다. 신라로서는 진흥왕 이래 백제와 그 혈투를 치르면서 악착같이 고수해 온 한강 유역 땅을 생으로 내놓고 소백산맥 이남 경상도 지역에서 옹기종기 살아가는 옛 신라로 돌아가라는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다. 반면 연개소문이 한강 유역에 그렇게 진심이었다면 백제와 은밀히 상의하여 옛 신라 땅은 너희가 먹고 한강 유역은 우리가 먹는다는 외교적 해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되레 김춘...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