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하얗게 나 자신을 포장하고 싶어요" - 주체성의 양식으로서 1920년대 현대 여성의 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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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문화비평
2023/08/03
1920년대 화장한 여성의 모습을 재연한 이미지(한겨레)

"맑고 하얗게 나 자신을 포장하고 싶어요" - 주체성의 양식으로서 1920년대 현대 여성의 화장

근대는 시야의 확장과 시선의 나열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사물에만 적용되는 개념은 아니었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 백화점의 여점원으로 일하는 “채봉”이 역시 쇼윈도 위에 물건들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XX백화점 맨 아래층의 화장품 매장이다. 위와 안팎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유리 진열장을 뒤쪽 한편만 벽을 의지삼고 좌우와 앞으로 빙 둘러 쌓아놓은 게 우선 시원하고 정갈스러 눈에 썬듯 뜨인다. 진열장 속과 위로는 형상이 모두 각각이요, 색채가 아롱이다롱이기는 하지만 제각기 용기의 본새랄지 곽의 의장이랄지가 어느것 할 것없이 섬세할이만큼 그득 들이쌓였다. 두 평은 됨직한 진열장 둘레 안에는 그들이 팔고 있는 화장품 못지 않게 맵시 말쑥말쑥한 숍걸이 넷, 모두 또래 고 또래 들이다.(채만식, 「탁류」, 『채만식 전집』2, 창작사, 1987, pp.401-402)

화자의 서술 속에서 “화장품”과 “숍걸”의 차이는 없다. 네 명의 여성들도 물건처럼 잘 진열되어 있는 상태를 설명해주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잘 포장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이다. 
   
앞서서 내린 여자가 이신국씨의 따님일 것이다. 나이로 따져 스물세네살, 경쾌한 양장에 커-다란 모자를 쓰고 눈에는 강렬한자외선을 피하기 위함인지 까마득한 색안경을 썼다. 꺼먼 가죽으로 만든 핸드백 하나만을 끼고 그는 세 사람 사나이의 가운데 나섰다. 뒤따라 차에서 내린 사나이는 꼴푸바지와 흰 저거를 입은 둥실둥실한 삽십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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