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바란다 -바르샤바 게토 봉기를 떠올리며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10/10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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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이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유럽에서 유태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 중의 하나였다.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는 바르샤바에 살던 40만 유태인을 10만명이 들어설 수 있을까 말까 하는 면적에 밀어넣고 콘크리트 담을 쳐 버렸다. 사람이 들끓는 곳에서 많아지는 것은 질병이고 부족해지는 것은 식량이다. 나치의 폴란드 총독 한스 프랑크는 이 인구가 먹고 살 수 있는 식량을 충분히 공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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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토를 벗어나면 총살이었고 게토 안에서 돈을 벌 일터도 없었다. <신들러 리스트>의 신들러처럼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려는 독일인 자본가들의 군수공장 말고 허락되는 일거리도 없었다. 하루에 수프 한 그릇 얻어먹으면 다행이었다. 이런 형편 하에서 굶주리고 쇠약한 사람들은 수도 없이 죽어갔다. 아이들이 죽으면 묻지도 않고 그냥 하수구에 버렸다. 묻을 힘도 땅도 화장할 연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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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유태인들은 게토 안에서 ‘서서히’ 줄어들었지만 하인리히 힘러를 비롯한 나치 수뇌부 눈에는 그 속도가 한없이 느렸다. 그래서 만들어진 살인공장들, 즉 강제수용소들이 하나 둘 완성되기 시작했고 유태인들은 노예선의 노예들처럼 기차에 빽빽이 들어찬 채 수용소로 끌려간다. 점차 시간이 가면서 그들이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설마 그럴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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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 게토 안에도 유태인들의 지도자가 있었다, 성실한 사람이었고 지도자로서 책임감도 있고 인품도 훌륭했다. 그는 수용소의 실상을 알면서도 독일군과 협상하여 수용소행 사람들의 수를 줄이려 발버둥치는 것을 최선으로 삼았다. 하지만 몇몇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몽땅 무기력하게 도축(?)당하기 전에 찍소리나 해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모르데차이 아리엘레비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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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업라이징> 중 모르대차이 (왼쪽에서 두 번째)
그와 그 동료들은 봉기를 준비한다. 마...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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