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문화의 시대] 종말론적 ‘인류세’는 경계해야
2024/04/20
세계 지질학계가 지난 3월 26일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인류세를 1만1700년 전에 시작된 홀로세에 이어서 핵무기 실험이 본격화된 1950년대의 ‘대가속기’(Great Acceleration)에 시작된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정하자는 인류세실무그룹(AWG)의 권고를 공식적으로 부결시킨 것이다. AWG가 제안한 인류세의 기간이 지구의 지질구조에 미친 영향을 지질학적으로 확인하기에는 너무 짧다는 것이 거부의 핵심 이유였다. 어쨌든 지난 15년 동안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던 국제지질학연합(IUGS)과 국제층서위원회(ICS)의 지루하고 복잡한 학술적 검토와 논의를 드디어 마감하게 된 것이다.
현대 지질학이 지구 시스템에 미치는 인류의 영향을 통째로 부정한 것은 아니다. 인류가 지구의 지권·수권·기권과 생태계 전반에 미치고 있는 영향은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분명한 과학적 진실이다. 다만 세계 지질학계가 지질구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지질학적 증거가 새로운 지질시대의 구분이 필요할 정도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에 합의했을 뿐이다. 오로지 지질학의 권위와 명성을 빌어서 현실을 과장하는 무분별한 시도는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고 인류세가 학술적·사회적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류가 지질구조에 남긴 영향을 더 합리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인류세를 ‘지질시대’가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지질학적 ‘사건’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인류가 지질구조에 남기고 있는 영향은 ‘인류세’가 아니라 ‘인류세 사건’(ongoing anthropocene event)으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실무그룹의 권고안
인류세 논란은 2000년 멕시코의 쿠에르나바카에서 개최된 지질학 학술회의에서 대기화학자 폴 크루첸이 제기한 ‘지구의 현재 상태를 홀로세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으로 시작됐다. 지층(地層)에 남겨진 기록을 근거로 45억5000만 년에 이르는 장구한 지구의 역사를 연구하는 지질학자에게 대...
과학기술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과학 상식과 비판적 사고방식, 특히 생명의 근원이고 문명의 핵심인 탄소의 가치를 강조하는 '탄소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