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인력네트워크나 동종선호가, 개개인의 악한 의도 보다는 편의성이나 비용적으로 유리함으로 인하여 형성된다는 설명은 참 흥미롭네요.
이 글만 읽고나서 드는 생각은 그렇다면 지금은 거의 사라져가는 공채나, 수능 등의 공개경쟁과, 시험을 내용으로 하는 채용 절차가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게 '공정'한거 아닌가 하는 의문입니다. 시험이 능력을 반영한다는 뜻도 아니고, 시험이 평등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꾸준히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부터 시작해서 반례는 많죠). 다만 대학 입시 때부터 각종 추천서와 인맥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소수자들이 처음부터 소외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이런 식의 '공정' 논의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서 마음이 약간 ...
이 글만 읽고나서 드는 생각은 그렇다면 지금은 거의 사라져가는 공채나, 수능 등의 공개경쟁과, 시험을 내용으로 하는 채용 절차가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게 '공정'한거 아닌가 하는 의문입니다. 시험이 능력을 반영한다는 뜻도 아니고, 시험이 평등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꾸준히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부터 시작해서 반례는 많죠). 다만 대학 입시 때부터 각종 추천서와 인맥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소수자들이 처음부터 소외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이런 식의 '공정' 논의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서 마음이 약간 ...
부유한, 기득권층은 사실 수능, 공채와 같은 시험뿐 아니라 어떤 방식의 제도에서도 사회적약자에 비해 유리하죠 다만 공채와 같은 시험제도가 다른 모든 방법중에 그나마 사회적약자가 더 공정하게 경쟁할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현재로선 최선의 제도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공채나 수능 등의 동일한 기준에서 이뤄지는 공개 경쟁은 거대 시스템(대학교/대기업)에서 행할 수 있는 가장 기초가 되는 공정함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타날 수 있는 불공정함은 이 선을 기준으로 보조선을 그어가며 조정해 나가는 방향으로 공정함을 추구해 왔다고 생각하구요. 그런데 사실 이 또한 누가 유리한지 또는 누가 불리한지 완벽히 알 수 없기 때문에 한 보조선을 공정함을 기준이라고 강조하는 순간 가장 기초가 되는 선이 깨져 버릴 수 있는 모순을 만나게 되는데요, 이러한 양상이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공정성 논쟁을 설명하지 않나 생각해요.
이런 생각 때문일까요. 저는 하나의 기준 선 위에 수많은 보조선을 그어서 공정함이 해결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회의감을 갖고 있어요.
저는 공정성에 집중하는 대신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바로 왜 우리는 경쟁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인데요. 경쟁해야 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공정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그러한 사회에서 만연한 불안감이 동종선호를 강화하고, 다양성을 침해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이 문제의 가장 깊은 곳에는 우리 사회가 거대 시스템에 너무나도 의존적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문제는 나라 단위의 의존성으로 발전했기에 하나의 나라 규모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 버렸구요. 그 누구도 (개인/기업/국가) 홀로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하는 순간 저 밑바닥으로 떨어져 버리게 되는 실정이구요. 더 소설을 써보자면 '기후위기' 또한 이 의존성이 원인이며, 해결을 위해 강단있는 행동을 취하기 어려운 이유도 이 의존성이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효율을 좋게 하는 방법도 찾았고, 그 효율로 인해 혜택을 받고 살고 있지만, 그 효율로 부터 벗어나는 법은 찾지 못한거죠. '원숭이 꽃신' 우화에서 나오는 꽃신을 포기하지 못하는 원숭이 처럼 말이에요.
지금도 세계 정부와 같은 강력한 정권이 등장해서 Top-down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주길 기대하지만, 글쎄요 '공정성'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런 방식으로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해야만 해결할 수 있겠죠.
저는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방식은 Bottom-up 방식에 있다고 봐요. 우리 세상이 너무나도 얽혀 있는 것을 풀어내야 하구요. 그렇기 위해선 의식주를 포함한 생활에서부터 독립적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술은 Top-down의 효율이 아닌, Bottom-up을 위한 독립성에 투자되어야 하구요. 물물교환을 위한 '자본'에서도 이러한 개념이 필요할 거라 생각해요. 예를 들면 '기본 소득' 처럼 말이지요.
꽤나 장황한 잘 정리 되지 않은 어떻게 보면 소설이 난무한 글이 되었는데요.. 논의가 활발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에 용기 내어 적어봅니다..ㅎㅎ
말씀하신 것처럼 공채나 수능 등의 동일한 기준에서 이뤄지는 공개 경쟁은 거대 시스템(대학교/대기업)에서 행할 수 있는 가장 기초가 되는 공정함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타날 수 있는 불공정함은 이 선을 기준으로 보조선을 그어가며 조정해 나가는 방향으로 공정함을 추구해 왔다고 생각하구요. 그런데 사실 이 또한 누가 유리한지 또는 누가 불리한지 완벽히 알 수 없기 때문에 한 보조선을 공정함을 기준이라고 강조하는 순간 가장 기초가 되는 선이 깨져 버릴 수 있는 모순을 만나게 되는데요, 이러한 양상이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공정성 논쟁을 설명하지 않나 생각해요.
이런 생각 때문일까요. 저는 하나의 기준 선 위에 수많은 보조선을 그어서 공정함이 해결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회의감을 갖고 있어요.
저는 공정성에 집중하는 대신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바로 왜 우리는 경쟁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인데요. 경쟁해야 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공정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그러한 사회에서 만연한 불안감이 동종선호를 강화하고, 다양성을 침해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이 문제의 가장 깊은 곳에는 우리 사회가 거대 시스템에 너무나도 의존적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문제는 나라 단위의 의존성으로 발전했기에 하나의 나라 규모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 버렸구요. 그 누구도 (개인/기업/국가) 홀로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하는 순간 저 밑바닥으로 떨어져 버리게 되는 실정이구요. 더 소설을 써보자면 '기후위기' 또한 이 의존성이 원인이며, 해결을 위해 강단있는 행동을 취하기 어려운 이유도 이 의존성이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효율을 좋게 하는 방법도 찾았고, 그 효율로 인해 혜택을 받고 살고 있지만, 그 효율로 부터 벗어나는 법은 찾지 못한거죠. '원숭이 꽃신' 우화에서 나오는 꽃신을 포기하지 못하는 원숭이 처럼 말이에요.
지금도 세계 정부와 같은 강력한 정권이 등장해서 Top-down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주길 기대하지만, 글쎄요 '공정성'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런 방식으로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해야만 해결할 수 있겠죠.
저는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방식은 Bottom-up 방식에 있다고 봐요. 우리 세상이 너무나도 얽혀 있는 것을 풀어내야 하구요. 그렇기 위해선 의식주를 포함한 생활에서부터 독립적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술은 Top-down의 효율이 아닌, Bottom-up을 위한 독립성에 투자되어야 하구요. 물물교환을 위한 '자본'에서도 이러한 개념이 필요할 거라 생각해요. 예를 들면 '기본 소득' 처럼 말이지요.
꽤나 장황한 잘 정리 되지 않은 어떻게 보면 소설이 난무한 글이 되었는데요.. 논의가 활발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에 용기 내어 적어봅니다..ㅎㅎ
부유한, 기득권층은 사실 수능, 공채와 같은 시험뿐 아니라 어떤 방식의 제도에서도 사회적약자에 비해 유리하죠 다만 공채와 같은 시험제도가 다른 모든 방법중에 그나마 사회적약자가 더 공정하게 경쟁할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현재로선 최선의 제도이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