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해도 동기는 남는다. 남초 직장이었던 탓에 가장 친한 동기도 남자 둘. 5년 전, 내가 퇴사하고 이리저리 한국 안팎을 떠도는 동안 그들은 줄곧 착실한 직장인이었다. 이제 대리를 넘어 과장을 바라보는 연차. 경사스럽게도 둘은 몇 달 전 연달아 결혼을 했다. 서로가 서로의 사회를 봐주는 것은 덤. 결혼식을 앞두고 오랜만에 그들을 만났다. 한 번에 청첩장을 두 개나 받는 모임이었다. '님들도 결국 결혼이란 걸 하는구나…'

그 세계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그 세계란, 내가 결국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던 정상성의 세계.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남성이, 연봉 높은 대기업에 들어가서, 적당한 나이에 서로 수준에 맞는 여성을 만나, 신혼집을 마련하고 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당연한, '탄탄대로 생애주기'의 세계. 조금이라도 그 주기에서 어긋나면 하자 있는 인간이 되기 때문에 적당한 자기변명을 마련해 두지 않으면 안 되었던 세계. (그 세계에 '비혼'은 번식 탈락자의 자기변명일 뿐!)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인지라. 내 친구들이 탄탄대로 생애주기에 무사 안착한 게 정말 기뻤다. 

두 명의 예비 신랑과 마주 앉은자리. ‘아, 남의 돈으로 먹는 술맛 좋다, 비록 곧 님들 축의금으로 몇십만 원 쓰겠지만…’하는 생각으로 부어라 마셔라 하던 와중, 예비 신랑 A의 섭섭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왜 우리한테 페미니즘 얘기 안 해…?"

왜 페미 얘기 안 했냐? 할 필요 없으니까. A가 말하는 ‘페미 얘기’가 뭔진 몰겠다만, 페미 얘기는 페미랑 하면 되눙데…. 내 주위에 있는 정상성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는, 가난하지만 주체적인 여성들이랑 그런 페미 얘기 하는 게 더 잼난데…. 굳이 정상성의 화신인 남성 동지들과 '페미 묻은' 대화를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걔네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다. X 같은 사회 초년생 시절을 같이 견디고, 아빠가 장지에서 재가 되는 순간까지 함께 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