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아카이브의 강물 위를 떠다니는 현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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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문화비평
2023/08/16
디지털 아카이브의 강물 위를 떠다니는 현대인(PNG트리)

디지털 아카이브의 강물 위를 떠다니는 현대인

시간이 멈춘 디지털 아카이브의 공간에서 흐르는 것은 우리다. 
   
현대 가상 공간의 거주자들은 물리적 공간의 초월 감각을 체화했지만, 그와 함께 휘발을 멈추고 축적되어 가는 좀비적 시간을 감당하게 되었다. 아니, 사실 흐르는 것은 공간이다. SNS의 타임라인부터 유튜브의 다음 동영상까지, 우리를 맞이하는 공간들은 시간의 이름을 뒤집어쓰고 하염없이 흐른다. 고정된 장소를 의미하던 물리적 공간 개념은 기계로 구현된 가상 공간에서 속도와 가속이라는 기계의 성질을 부여받았다. 

기술 문명이 이동 그 자체 속에 삶의 고정성을 구축한다는 비릴리오의 지적¹⁾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공간을 소멸시키고 시간만을 남겼던 19세기 고속 이동 기계에서 21세기 디지털 기록 기계로 이주한 우리에겐 시간이 소멸된 가상 공간이 남았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가상 공간 기계장치 안에서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흐르는 존재, 액체가 되었다. 

시간의 연속성, 연대기적 시간 감각은 교통수단 혁명이 우리 신체에 다양한 속도들을 부여한 순간 일찍이 폐기되었다²⁾. 액화된 가상의 몸 또한 이러한 탈-연대기적, 비-인과적 시간 독해법을 이어받는다. 가상 공간에서 이루어진 발화들은 그것의 시간적 세이브 포인트가 된다. 과거들은 돌연히 우리를 호출하며 두서없이 재방문된다. 각기 다른 시대로부터 도착한 순례 행렬이 박제된 성지에 모인다. 

불연속적 축지-이동술을 끊임없이 수행하며 우리는 비릴리오의 묘사처럼 주체적 시공간 밖으로 납치당하는 듯 보인다. 임근준은 이러한 판단 유예 시공의 박탈로부터 영원히 20세기를 데이터베이스 삼는 파생물의 시대, 좀비-모던³⁾이 도래했다고 진단한다. 픽션에 투영되는 디스토피아 상이 <메트로폴리스>(1927)의 기계에 의해 사물화된 인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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