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군사독재 ‘전두환 정부’에 대한 사색
2024/09/03
#2023년 11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이내훈의 아웃사이더] 30번째 기사입니다. 이내훈씨는 프리랜서 만화가이자 정치인입니다. 주로 비양당 제3지대 정당에서 정치 경험을 쌓았고 현재는 민생당 소속으로 최고위원과 수석대변인을 맡고 있습니다. 이내훈의 아웃사이더는 텍스트 칼럼 또는 전화 인터뷰 기사로 진행됩니다.
[평범한미디어 이내훈 칼럼니스트]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 받는 인물은 누가 뭐래도 전두환이다. 전두환의 온갖 악행들로 인한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전두환의 발자취를 짚어보고 싶었다. 다들 알고 있는 익숙한 5공 정권의 탄생기를 처음부터 살펴보자.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후 계엄령이 선포되고 권력에 공백이 생겼다. 빈틈을 치고 올라온 것은 전두환 소장. 10.26 사태에 대한 수사권을 쥐고 있던 전두환 소장(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은 1979년 12월12일 포스타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하려 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 국군 집단간에 충돌이 벌어졌는데 전두환 집단이 승리했다. 이들이 바로 ‘신군부’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생생하게 봤던 그 과정을 떠올려보면 된다. 신군부는 군사 반란에 성공했지만 미국의 추인을 바로 받진 못 했다. 따라서 최규하 대통령 대행 체제를 즉시 부정하지 못 했다. 그럼에도 대세는 넘어갔던 상황이라 최규하 대통령은 1980년 8월 하야하게 됐고 전두환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선거로 대통령직을 차지하게 됐다.
전두환 체제가 들어설 당시 정당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여당 민주공화당은 박정희 대통령 사후에 사분오열되어 정치적 존재감이 전무했다. 야당 신민당은 김영삼과 김대중의 주도권 다툼이 극심했던 터라 신군부의 야욕을 저지할 수 없었다. 1980년 5월15일에는 학생들이 신군부에 반대하는 가두 시위...
평범한미디어는 언론사입니다. 국회를 출입했던 정치부 기자 출신 30대 청년이 2021년 3월 광주로 내려와서 창간했습니다. 지속적으로 좋은 기사를 쓰고 싶어서 겁 없이 언론사를 만들었는데요. 컨텐츠 방향성, 취재 인력, 초기 자금, 수익구조, 사무실 등 무엇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좋은 공동체를 위해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언론인의 자세, 이것 하나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끝까지 버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