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를 끝내는 상상도 못했던 방식, 도널드 트럼프
2024/07/22
오랜 신자유주의 시대의 끝은 ‘사회의 귀환’일 거라고들 했다. 1980년대부터 전성기를 맞이한 신자유주의는 시장 우위 체제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 반대는 ‘사회적인 것’일 수밖에 없으니, 신자유주의가 끝난 자리에는 21세기형 뉴딜 같은 새로운 사회계약이 등장할 거라고들 했다. 상식적인 예측이었다.
완전히 헛짚었다. 신자유주의는 21세기형 뉴딜이 아니라 상상도 못하던 방식으로 무너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마치 신자유주의를 끝장내러 온 묵시록의 기사처럼 보인다. 민주당 지도자 그 누구도 못 했던 일이다. 그는 어떻게 그 일을 하는가?
1.
신자유주의는 어느 한 천재의 작품이 아니다. 하이에크도 프리드먼도 이 거대한 사조의 저작권을 온전히 주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치 영역에서라면,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흐름을 ‘선거 승리 연합’으로 만들어낸 천재는 있다. 로널드 레이건. 1980년 대선을 승리하며 50년 가까이 이어지던 ‘뉴딜 민주당 시대’를 끝장낸 정치가다.
민주당은 1932년 루스벨트의 대선 승리 이후 거의 반세기동안 미국 정치를 지배했다. 이 기간에는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조차 뉴딜 질서를 받아들이고 순응했다. 레이건은 그런 ‘뉴딜에 순응하는 공화당원’이 아니었다. 그는 뉴딜 질서가 ‘관료제와 대기업의 압제’라고 보았고, 이것이 시장과 개인의 자유를 질식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식인들이 책을 쓰는 것과 정치인이 정권을 잡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반세기동안 구축된 공고한 뉴딜 연합을 깨뜨려야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레이건은 천재적인 연합을 구축해 냈다. 그는 시장 자유를 중시하는 우파, 개인 자유를 중시하는 좌파를 한데 묶었다. 거기에 정말로 의외의 그룹이 추가된다. 백인 기독교 종족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미국이 ‘백인 기독교도의 나라’라고 믿는 오랜 전통의 계승자다. 유색인과 다른 종교에 배타적이다. 이들은 미국 사회에서 주류였던 적이 거의 없다.
미국은 ‘자유와 독립이라는 미국식 가치에 동의하는 모든 사람의 나라’로 스스로를 상상해 왔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공식 서사’다. 미국인이 된다는 것은 이 보편 가치에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시기별로 예외는 있지만 대체로) 이민자에게 관대했고, 혈통이나 인종보다 가치로 묶인 나라였다.
그러나 ‘백인 기독교도가 주인인 나라’라는 ‘대안 서사’는 ‘공식 서사’와 불화하면서도 밑바닥에서 끈질기게 살아 남았다. 19세기에 백인 종족주의는 앤드류 잭슨이라는 ‘인디언 사냥꾼’을 대통령(1828년, 1832년)으로 만들었다. 학자들은 미국의 기층에 흐르는 백인 기독교 종족주의에 ‘잭슨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다.
신자유주의 사조에서는 모든 인간이 ‘시장 앞에 평등’하다. 백인 기독교 종족주의와 궁합이 좋지는 않다. 레이건의 정치적 천재성은, 두 이질적인 그룹을 묶어내는 ‘공통의 적’을 정의한 데서 번뜩였다. ‘연방정부’였다. 연방정부는 자유의 적이다. 왜? 거대한 관료제가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고 압제로 기운다. 연방정부는 백인 기독교 종족주의의 적이다. 왜? 미국은 스스로의 삶의 방식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나라였다. 그런데 연방정부가 자꾸 이상한 법을 만들어서 인종을 강제로 뒤섞어 살게 만들고 기독교적 삶을 방해한다.
이것으로 자유지상주의와 백인 기독교 종족주의의 기묘한 연합이 이뤄졌다. 연방정부라는 거악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스스로 삶의 방식을 선택할 자유(그게 인종차별이든 뭐든)를 지키는 연합이 생겼다. 레이건 혁명은 이렇게 다수파를 만들었다. 이제 신자유주의는 몇몇 사상가들의 책 속에 존재하는 이념을 넘어, 뉴딜 질서를 대체하는 새 질서로 진화했다.
2.
도널드 트럼프는 무엇보다도 먼저, 레이건 반(反)혁명이다. 그는 레이건이 만들어낸 공고한 연합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찾아낸 최초의 정치가다. 클린턴이든 오바마든, 민주당 지도자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해냈다.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시키는 시장 자유의 확장은 정작 보통 사람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미국에서 세계화로 이득을 본 것은 글로벌 기업, 그리고 소수 지식 근로자다. 한때 미국 중산층 대부분을 채웠던 ‘대학을 나오지 않은 백인 제조업 노동자’는 갈수록 궁핍해 졌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질서가 갈수록 해결하기 어려워하던 모순이다.
백인 노동계층은 뉴딜 질서의 최고 수혜층이다. 이들은 주로 남부 백인들이 가졌던 잭슨주의에 별 관심이 없었고, 뉴딜 질서(1930~70년대)와 신자유주의 질서(1980~2010년대) 내내 충성스러운 민주당 투표 블록이었다.
백인 기독교 종족주의는 미국 역사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하지만 이들은 언제나 누군가의 하위 파트너였다. 루스벨트 시절에는 뉴딜의, 레이건 시절에는 신자유주의의 승리를 돕는 역할에 그쳤다. 미국이 패권국가가 된 후로 잭슨주의는 더 억눌렸다. 이들은 미국 패권이 만드는 국제질서와도 궁합이 나빴다.
도널드 트럼프의 정치적 천재성은, ‘북부 제조업 지대의 백인 노동자’를 ‘백인 기독교 종족주의’의 일원으로 묶어 내고, 이를 통해 ‘레이건 연합’에 묶여 있던 잭슨주의를 독자 세력으로 분출시킨 것이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백인 기독교 종족주의자들의 불만과 북부 백인 노동계층의 새로운 불만에 ‘공통의 적’을 찾아 주었다. 이민자, 특히 무슬림 이민자, 그리고 그 자격 없는 이들을 ‘미국인’으로 받아들일 음모를 꾸미는 엘리트였다. 특히 민주당은 이런 자격 없는 이들을 자꾸 미국인으로 만들어 권력을 탈취해 가는 집단이다.
트럼프는 미국이 패권국가가 된 후 최초로 등장한 잭슨주의 대통령이다. 19세기 이후 처음으로, 잭슨주의가 하위 파트너가 아니라 주류인 정권이 탄생했다. 트럼프는 임기 중 집무실에 앤드류 잭슨의 초상화를 걸었다. 그리고 후임자인 바이든은 백악관에 오자마자 그 초상화를 치웠다.
트럼프는 레이건 혁명을 해체한 공화당 대통령이었고, 현대 공화당은 레이건 혁명이 만든 정당이었다. 그래서 그의 첫 임기는 공화당의 ‘내전기’였다. 트럼프가 되살려낸 잭슨주의와 공화당 주류의 신자유주의가 충돌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 공화당 주류 인사들은 사실상 ‘트럼프를 제어하는 임무’를 받고 파견된 질서 수호자들이었다.
틸러슨은 임기 중 경질됐다. 마이크 펜스는 이제 J.D 밴스(2024년 대선 부통령 지명자)로 바뀐다. 밴스는 가난한 백인 가정 출신으로 자전 논픽션 <힐빌리의 노래>를 썼다. 잭슨주의의 현대 버전을 포착해 스타가 된 인물이다. 트럼프는 첫 임기 때 벌인 내전을 이어갈 생각이 없다. 공화당은 ‘트럼피즘 정당’으로 재편이 끝났다. 이것은 레이건 이후 최대의 노선 변경, 한 세대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급변침이었다. 신자유주의 질서의 수호자들은 세력을 잃었고 몇몇은 그 싫어하던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선택으로 몰렸다.
이런 식으로 정치 지형을 재구성해내는 정치인은 무척 드물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 분야에서만큼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로널드 레이건의 계보를 잇는 보기 드문 대통령이다. 미국 역사에서 그보다 훌륭한 대통령은 꽤 많다(사실, 그보다 못한 대통령을 꼽기 어렵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정치 지형의 재구성을 해낸 대통령은 정말이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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