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사상계』와 한국 지성사의 맥락 - 진보비평의 출발과 저항운동의 기지
2023/04/06
잡지 『사상계』는 한국전쟁 직후 한국 사회의 ‘지식 엘리트’들이 계몽의 의도를 가지고 기획한 잡지로 볼 수 있다. 1960년대 초반까지 한국 사회는 사회분화에 기초한 대중사회가 정착되기 전이었으며, 이에 서북지역 출신의 지식인들은 『사상계』를 구심으로 공론영역을 형성해 담론을 생산하려는 노력을 계속적으로 펼쳐 나간다. 이처럼 『사상계』를 구성하는 지식인들은 월남한 서북지역 출신이라는 분명한 지적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또 1955년에서 1963년에 이르는 시기에 발표된 한국사회의 비평과 문학은 『사상계』가 전문 문예잡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상계』가 추동하는 지식 담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분단과 전쟁 시기에 주요 문인(지식인)들이 월북한 사실은 1950년대 ‘한국(남한)’ 사회 지성사의 단절을 야기한 원인으로 자연스럽게 해석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문학사(지성사)가 새롭게 출발하는 자리에 '누가' 있었느냐를 조망하는 것은 1950년대 문학 연구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사상계』는 1950년대 새로운 문학과 지식 운동의 최전선에 선 ‘젊은’ 문인들(소위 ‘전후세대')의 주요 무대였다. 그중 월남한 서북 지역 출신들이 주로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1950년대 문학은 당대의 지식인 담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당대 지식인 담론을 주도한 것은 『사상계』 지식인 집단이었다. 이들은 장준하를 위시한 김준엽, 김성한, 신상초, 안병욱 등의 『사상계』 편집위원들, 『사상계』에 많은 글을 기고한 함석헌, 김재준(이들 모두 서북지역 출신)과 또 이념적으로 연결된 남한 출신 유달영 등이다. 이들은 모두 이념적으로 강력하게 결탁되어 있었으며 『사상계』를 통해 자신들의 이념 실현에 주력했다. 『사상계』는 1950년대의 ‘참여론’, ‘세대론’, ‘실존주의’ 담론 등이 갱신되는 지식인 사회의 공론장 영역...
@박 스테파노 사상계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으시네요. 저야 나중에 풍문으로만 들어봤을 정도이고, 헌책방에서 군데군데 끼워 맞추며 조각글이나 읽었던 신세입니다. 장준하, 함석헌 빛나는 이름들, 고작 책속에서나 봽던 분들이구요. 말씀하신 '담론'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바가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캘리뽀냐 항상 감사합니다.
"‘사상계’는 펜을 가지고 칼에 대항했다. 지성의 무기를 가지고 권력의 아성에 육박했다. ‘사상계’에는 계몽의 메시지가 있었고, 비판의 언어가 있었다. 독재에 항거하는 자유의 절규가 있었고 관권에 대결하는 민권의 필봉이 있었다." -안병욱, ‘칼의 힘과 펜의 힘’, ‘사상계’ 1969년 12월호-
흔히 '사상계'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제가 학생 시절 386이라는 80년대 학번과 이후를 구분하는 이야기처럼, 정말 암담했던 5060의 시대를 겪어 온 세대를 말해 주는 거리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사상계를 직접 접하지는 못했지만, 헌책방에서 구하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네요. 말씀하신 부분에서 '담론'에 대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층적이며 길항하는 것인데... 요즘에는 '담론'이 '피켓팅'이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피켓팅도 사실 그 안의 문구가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들고 있는 사람이 주인공이고자 하면서 퇴색되었듯이, 담론은 글과 말이 조명받아야 마땅한데, 그 말과 글을 쏟아 낸 사람이 더 앞장서는 모습이 왠지 불편할 뿐입니다. 그래서 '담론'이라는 말이 곧이 곧대로 들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장준하 선생과 함석헌 선생이 생각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박 스테파노 사상계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으시네요. 저야 나중에 풍문으로만 들어봤을 정도이고, 헌책방에서 군데군데 끼워 맞추며 조각글이나 읽었던 신세입니다. 장준하, 함석헌 빛나는 이름들, 고작 책속에서나 봽던 분들이구요. 말씀하신 '담론'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바가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상계’는 펜을 가지고 칼에 대항했다. 지성의 무기를 가지고 권력의 아성에 육박했다. ‘사상계’에는 계몽의 메시지가 있었고, 비판의 언어가 있었다. 독재에 항거하는 자유의 절규가 있었고 관권에 대결하는 민권의 필봉이 있었다." -안병욱, ‘칼의 힘과 펜의 힘’, ‘사상계’ 1969년 12월호-
흔히 '사상계'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제가 학생 시절 386이라는 80년대 학번과 이후를 구분하는 이야기처럼, 정말 암담했던 5060의 시대를 겪어 온 세대를 말해 주는 거리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사상계를 직접 접하지는 못했지만, 헌책방에서 구하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네요. 말씀하신 부분에서 '담론'에 대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층적이며 길항하는 것인데... 요즘에는 '담론'이 '피켓팅'이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피켓팅도 사실 그 안의 문구가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들고 있는 사람이 주인공이고자 하면서 퇴색되었듯이, 담론은 글과 말이 조명받아야 마땅한데, 그 말과 글을 쏟아 낸 사람이 더 앞장서는 모습이 왠지 불편할 뿐입니다. 그래서 '담론'이라는 말이 곧이 곧대로 들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장준하 선생과 함석헌 선생이 생각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