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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산다는 것
분교문제는 왜 사회적인가? (2)
2023/01/03
Previously on 분교연작
1. 분교설립의 역사적 맥락
권영섭 논문의 결론:(1) 수도권 인구분산등 분교설립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입지가 매우 중요하다. (1-1)조치원의 경우 서울 접근성이 좋아서 교직원 및 학생이 지역에 터잡지 못(안)하고있는 반면, (1-2)원주캠퍼스는 사실상 '고립'되어있어서 지역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있다. (2) 따라서 지역발전을 고려한다면 "통근 통학을 배제할 수 있는 지역이어야 한다"(같은 글, p.64)
권영섭 논문의 결론:(1) 수도권 인구분산등 분교설립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입지가 매우 중요하다. (1-1)조치원의 경우 서울 접근성이 좋아서 교직원 및 학생이 지역에 터잡지 못(안)하고있는 반면, (1-2)원주캠퍼스는 사실상 '고립'되어있어서 지역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있다. (2) 따라서 지역발전을 고려한다면 "통근 통학을 배제할 수 있는 지역이어야 한다"(같은 글, p.64)
이번회차는 지난회에 이어 분교’문제’를 다룬 연구들을 조금 더 살펴보고, 이 문제가 왜 단순히 개인의 상처나 무능의 문제가 아닌지를 살펴본다.
'고립'이 매우 신경쓰이지만 일단 <역사적 맥락>을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자. 여러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분교가 설립된 이유를 '국토불균형'에서 찾고 있다. 무려 50여년도 전인 70년대 말에 이런 '혜안'을 가졌다니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이 '거국적'인 기획은 산업화,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역점을 두던 중공업 전환이라는 맥락과는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정무용은 <1970년대 중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의 시행과 '교육격차'>라는 논문에서 이 시절의 평준화는 "중등교육 수요의 팽창에 대한 공급의 확대를 위해 추진"(p.129)된 한편, 대도시 위주로 공급된 시설투자로 인해 도농간 격차가 촉발되었다. 한편, 산업입국을 목표로하던 시기 고급인력양성이 주요한 과제로 떠올랐고, "산업인력수요 확대에 따른 '표준적인' 산업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p.132)으로서의 고교평준화 정책이 제기된다.
이때 우리가 주목할 키워드는 도농격차와 산업인력수요인데, 이 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묘안'으로 지방대 설립이 추진되었다고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정부는 서울'집중화'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으로 '인서울'대학에 대한 투자나 자금지원, 정원확대를 금지하기에 이른다. 대학들의 숨통을 조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러 '지방대학'들이 학생만 뽑...
안녕하십니까. 선생님과 같은 지방대 원생의 처지로서 선생님의 많은 글에 공감하는 입장입니다.
다만 저 역시 대학원이 있는 분캠을 다니고 있지만, 딱히 이것이 분캠문제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요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교수들이 '이상적인 존재'로서 분교 대학원의 학생들을 "훌륭한 동료, 조교이자 연구의 깊이를 더해줄 동반자"로 대해준다면 학교의 재생산과 유지가 어느 정도 가능할 맥락 하나가 될 수는 있다고 봅니다. 또한 그런 동료들을 버릴 수 없어 분교에 대한 소속감이 있겠지요.
하지만 실질은 대체로 본교 출신의 교수들이 "훌륭한 동료, 조교이자 연구의 깊이를 더해줄 동반자"로 보지 않으면서 분교 대학원을 운영한다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즉 언급하신 내부 식민지로서 자기가 자리를 지키고 후배 한자리 꽃아줄 공간으로는 생각하지만, 분교 학생들을 재생산해줄 생각은 전혀 없는 운영이 가능하니깐요.
일례로 저희 학과나 다른 인문 2개과의 경우, 최소 1세대 원생 몇명 정도는 열심히 키워서 '마름' 정도는 할 수 있는 역할로 성장시키지만, 석사 학위 주고 1~2년 정도 박사수업학기를 완료하면 학교 잡무행정이나 지역사업 등을 마름에게 전적으로 맡겨두고 자신은 학교에 대한 소속감 같은게 없이 서울에서의 생활과 활동이 가능합니다.
(그나마 그렇게 키운 마름이라도 잘되면 좋은데, 그것조차도 '불쌍한 우리 본교 후배나 본교 동료의 제자'를 꽃아주어야 한다며 밀려나는)
혹은 어느 인문 1개 과처럼 대학원의 고전적인 레파토리인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하면서 학생은 방치하고 교수는 월~수 출근의 자체 주 3일제(?)를 사는 경우도 가능하니깐요.
즉 본교 출신 교수들은 애초부터 소속감 자체가 분교에서 어떤 용을 쓰든 본교로 고정되어 있으며, 실제로도 대학원이 있건 없건 서울 명문대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차라리 아주 다른 학교라면 못할 일을 '본교와 분교는 하나'라는 점을 이런 때에 '역전'하여 본교 연구자를 우리가 같은 학교로서 챙겨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합리화 하고, 공부 못하는 분교 친구들은 그냥 쓰고 버려도 되는 것이 "거둬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줄"로 합리화가 가능한 분들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분캠의 대학원 운영도 인용하신 " ‘돈 거둬들이는 밭’"와 결과적으로는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실제로 학교측의 정원 요구 때문에 명목상으로 '일단 받고 보는' 교수님도 있으시고요.
그래서 대학원의 여부가 분캠문제의 해결에서 과연 도움이 될지 최소한 교수의 소속감이라도 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어찌보면 김종일 교수님의 말대로 차라리 공공성에 도움이 되고 학위 장사를 접게 하는 방향이 사회를 위해서나, 지역을 위해 공헌할 지역 거점 대학으로 집중을 위해서나, 불행한 사람의 재생산을 막기 위해서나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분교 시리즈 잘 읽고 있습니다. 한 가지 질문 내용이 있어서 댓글을 남깁니다. 지방캠퍼스에도 대학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사실 한국 대학원의 경우 서울 본캠조차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지 않나요? 통계 제시가 아닌 개인적 사례라 죄송한데, 정치학 대학원을 지원하려고 알아보던 중에 알게 된 점은, 흔히 말하는 SKY와 한양대,성균관대,서강대를 제외하고는 실질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정치학의 경우에는 말이죠. 운영되더라도, 제가 있던 건국대학교의 경우 랩 활동이나 단체로 수업을 듣는 게 아닌, 교수님들 아래에 한두 명 있거나 석사 학위가 필요한 분들만 수업을 듣고 계셨습니다.
물론, 형식상으로나 기회 측면으로 대학원이 설립되어야 한다는 근거가 따로 있다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대학원 문제는 분교 이전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분교 시리즈 잘 읽고 있습니다. 한 가지 질문 내용이 있어서 댓글을 남깁니다. 지방캠퍼스에도 대학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사실 한국 대학원의 경우 서울 본캠조차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지 않나요? 통계 제시가 아닌 개인적 사례라 죄송한데, 정치학 대학원을 지원하려고 알아보던 중에 알게 된 점은, 흔히 말하는 SKY와 한양대,성균관대,서강대를 제외하고는 실질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정치학의 경우에는 말이죠. 운영되더라도, 제가 있던 건국대학교의 경우 랩 활동이나 단체로 수업을 듣는 게 아닌, 교수님들 아래에 한두 명 있거나 석사 학위가 필요한 분들만 수업을 듣고 계셨습니다.
물론, 형식상으로나 기회 측면으로 대학원이 설립되어야 한다는 근거가 따로 있다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대학원 문제는 분교 이전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과 같은 지방대 원생의 처지로서 선생님의 많은 글에 공감하는 입장입니다.
다만 저 역시 대학원이 있는 분캠을 다니고 있지만, 딱히 이것이 분캠문제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요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교수들이 '이상적인 존재'로서 분교 대학원의 학생들을 "훌륭한 동료, 조교이자 연구의 깊이를 더해줄 동반자"로 대해준다면 학교의 재생산과 유지가 어느 정도 가능할 맥락 하나가 될 수는 있다고 봅니다. 또한 그런 동료들을 버릴 수 없어 분교에 대한 소속감이 있겠지요.
하지만 실질은 대체로 본교 출신의 교수들이 "훌륭한 동료, 조교이자 연구의 깊이를 더해줄 동반자"로 보지 않으면서 분교 대학원을 운영한다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즉 언급하신 내부 식민지로서 자기가 자리를 지키고 후배 한자리 꽃아줄 공간으로는 생각하지만, 분교 학생들을 재생산해줄 생각은 전혀 없는 운영이 가능하니깐요.
일례로 저희 학과나 다른 인문 2개과의 경우, 최소 1세대 원생 몇명 정도는 열심히 키워서 '마름' 정도는 할 수 있는 역할로 성장시키지만, 석사 학위 주고 1~2년 정도 박사수업학기를 완료하면 학교 잡무행정이나 지역사업 등을 마름에게 전적으로 맡겨두고 자신은 학교에 대한 소속감 같은게 없이 서울에서의 생활과 활동이 가능합니다.
(그나마 그렇게 키운 마름이라도 잘되면 좋은데, 그것조차도 '불쌍한 우리 본교 후배나 본교 동료의 제자'를 꽃아주어야 한다며 밀려나는)
혹은 어느 인문 1개 과처럼 대학원의 고전적인 레파토리인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하면서 학생은 방치하고 교수는 월~수 출근의 자체 주 3일제(?)를 사는 경우도 가능하니깐요.
즉 본교 출신 교수들은 애초부터 소속감 자체가 분교에서 어떤 용을 쓰든 본교로 고정되어 있으며, 실제로도 대학원이 있건 없건 서울 명문대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차라리 아주 다른 학교라면 못할 일을 '본교와 분교는 하나'라는 점을 이런 때에 '역전'하여 본교 연구자를 우리가 같은 학교로서 챙겨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합리화 하고, 공부 못하는 분교 친구들은 그냥 쓰고 버려도 되는 것이 "거둬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줄"로 합리화가 가능한 분들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분캠의 대학원 운영도 인용하신 " ‘돈 거둬들이는 밭’"와 결과적으로는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실제로 학교측의 정원 요구 때문에 명목상으로 '일단 받고 보는' 교수님도 있으시고요.
그래서 대학원의 여부가 분캠문제의 해결에서 과연 도움이 될지 최소한 교수의 소속감이라도 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어찌보면 김종일 교수님의 말대로 차라리 공공성에 도움이 되고 학위 장사를 접게 하는 방향이 사회를 위해서나, 지역을 위해 공헌할 지역 거점 대학으로 집중을 위해서나, 불행한 사람의 재생산을 막기 위해서나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